전미개오(轉迷開悟)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열반)에 이른다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뜻하는 말로, 올해 교수들이 선택한 ‘희망의 사자성어’ 1위를 차지했다.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르게 보자. 우리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은 거짓된 세력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헛된 욕망을 그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국민 하나하나가 미망에서 깨어나 현재를 바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성찰의 힘이 하나의 기둥이 될 때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백성이 깨어 있어야 지도자도 대오각성, 상생과 번영의 길을 도모하게 된다. 전미개오를 선택한 이유들이다.

 

실로 속임과 미혹의 연속이다. 천안함에서 전두환의 29만원까지! 2013년은 점입가경, 속임수를 다른 속임으로 덮는, 그렇게 우리를 미혹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거듭되었다. NLL 포기 여부 공방이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혹은 삭제 공방으로 이어지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검찰총장의 사생활 문제를 부각함으로써 호도되고. 조직적 선거개입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더니 결국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종북타령으로 이어지고.

 

문제는 이러한 혹세무민의 전략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계속 미혹의 수렁에 빠진다는 거. 대선 당시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던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등의 주요공약이 흐지부지 실종되어 버렸는데도 개의치 않고 개인의 일상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거. 기초노령연금 폐지 문제로 해당 장관이 사임을 하고 경제민주화를 입안했던 핵심참모가 밀려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통령 국정수행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거. 참다 참다 못해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여대고 있는데도 모르쇠 내 밥그릇 돌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거.

 

전미개오가 격탁양청(激濁揚淸 : 탁류를 몰아내고 청파를 끌어들인다)이나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함께 즐긴다)을 제치고 으뜸으로 뽑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교수들의 안타까움. 정의 실현이나 불평등의 해소도 정치권에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견인할 수 있는 것!

 

미혹에 휘둘리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적 연대,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아프게 되새기게 하는 갑오년 아침이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120년 전의 아픔을 떠올리며.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