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악 2.0

▲ 김은규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해 말 유튜브에 올라온 ‘독재 1.9’라는 다큐 동영상이 해가 바뀌고서도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6분짜리 이 다큐는 18대 대선에서 행해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이에 대한 진실 은폐 문제를 화두로 삼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묻고 있다. 폭압성이 선명히 드러나는 독재 보다 훨씬 진화되고 공고화된 형태를 ‘독재 2.0’이라 부를 수 있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1.9 형태라는 사회적 진단도 담고 있다. 마지막 남은 0.1은 한편으로는 불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희망이기도 할 것이다.

 

유사보도 실태조사 발표는 엄포

 

‘독재 1.9’의 소재를 ‘방송’으로 바꾸어도 동일한 맥락의 다큐가 완성된다. 제목을 차용하자면 ‘방송장악 1.9’라고나 할까. 혹자는 방송이 보수 정권과 보수 진영에 의해 이미 완전히 장악된 상황이기에 ‘방송장악 2.0’이 완성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심의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아직은 방송장악 1.9 상태가 맞는 듯 하다. 보수 진영이 보기에는 완전한 방송장악을 위해 더 손보아야 할 0.1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2월 30일 ‘유사보도 실태조사 결과 발표’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내용은 다수의 전문편성 방송사업자가 전문분야 이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편성 및 보도하고 있는데, 방송법 시행령(50조)에 따라 보도 전문편성 방송사업자 외에는 보도를 할 수 없으므로 관련 법규를 지켜달라는 요구이다. 그리고 CBS를 비롯한 종교방송과 교통방송, 전문편성 채널, 케이블방송의 지역채널 들의 유사보도 프로그램 목록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들이거나 지역 소식 프로그램들이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의 요구는 겉으로는 법규를 지키라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입 다물라’는 엄포인 것이다.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는 지난 9일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토대로 하는 방송심의 규정을 개정했다. 이 조항은 ‘방송은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방송은 남북한 간의 평화적 통일과 적법한 교류를 저해하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보면 너무나 지당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반대의견을 내 야당 측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의 주장처럼 자의적 해석에 의해 악용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6:3(정부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기울어진 심의위원의 구성과 다수결 의결 구조, 그리고 모호한 심의규정 속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보는 표적심의, 정치심의, 편파심의, 자판기심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에 해석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편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의 신설은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를 더욱 기울게 하는 것이다.

 

심의규정 개정도 언론 길들이기

 

그러기에 언론단체들은 이번 심의규정 개정이 ‘공안통치를 위한 언론 길들이기’, ‘국가보안법의 방송심의 버전’이라고 주장하며 이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규정 개정 역시 ‘그 입 다물라’는 또 다른 엄포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방송장악 완성을 위해 남은 0.1은 우리가 함으로써 공적을 치하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엿보이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김은규 교수는 중앙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민주언론시민연합 편집위원장·전주시민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