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은 10년을 주기로 변화되어 왔다.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로, 그리고 요새는 다시 ‘길 위에서’시리즈로 전(轉) 하고 있다. 기법적으로는 먹 인물화에서 황갈색의 숲 시리즈와 분청빛의 물시리즈로, 그러다가 화려한 여행 시리즈와 장엄한 우리 산수와 꽃시리즈로 선회 한 것 같다.
몇가지 패턴을 그리며 변모되어 온 듯 싶지만, 사실은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고 있는 데, 그것은 ‘생명’이다.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이를 내 나름대로의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표현의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내가 작품세계에 담고자 하는 정신과 뜻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다.”
지난 10일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에 부친 한국화가 김병종 교수(서울대 미술대)의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이다. 김 교수의 글을 빌리지 않더라도 전시장에 차려진 100여점의 작품들이 그의 예술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들이 자신을 각인시키는 방법은 한 우물을 파는 길이다. 특정 사물이나 인물, 풍경 등을 작업의 중심에 두고 특화시켜 이름을 얻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김병종의 작품세계는 얼핏 상업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바보예수’나 ‘생명의 노래’‘화첩기행’하나만 특화시켰을 때 일반에게 ‘어떤 화가’로 더 각인시켰을 것이란 의미에서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작품인생 30년 모두를 고향 전시장에 풀어놓았다. ‘생명’이라는 이름으로서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상황에도 그의 작품은 고향을 만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김 교수 스스로도 모악산 자락의 도립미술관과 자신의 그림이 잘 어울린다고 만족해 했다. 전시회가 아무리 성황리에 잘 진행되어도 뭔가 아쉽고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더라도 뿌듯한 경우가 있단다. 모악산 자락에 놓인‘생명’의 작품들이 더 생명력을 얻는 것 같기에 전시회 성과와 상관없이 좋은 기운으로 받아들였다.
개막 3일만인 지난 주말까지 이미 5000여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인 김병종 그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개막식 때 전시장을 찾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김병종의 그림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파닥파닥 뛰는 날치다’고 명쾌하게 정의 내렸다. 이 전 장관은 “바다를 벗어나는 순간 생명을 잃게 되는 물고기와 달리 위급한 순간에 바다 위로 뛰어 바다를 볼 수 있는 게 날치다”며 “김병종은 우리가 죽어야만 알 수 있었던 생명을 그렸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또 ‘바보예수’연작에 대해 “서양의 어떤 그림에서도 김 교수의 예수를 본 적이 없을 만큼 감동을 받았다”면서 “빨간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 예수의 모습은 우리와 같이 처절한 존재다”고 말했다.
도립미술관 개막전을 관람한 후 이튿날 전주한옥마을 교동아트미술관 김병종전을 둘러본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김병종 교수의 그림은 얼핏 단순한 것 같지만 볼수록 깊이가 우러난다”며, “한 번 보면 다시 와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윤상훈씨는“김병종의 작품은 힘차고 화사하면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그 세계가 날개를 한껏 펴고 고향 산천 쪽을 향해 날아가는 그의 그림속 학처럼. 모악산을 굽어보는 전북 도립미술관의 다섯 개 대형전시실을 가득채울 그의 생명찬가가 들판과 골짜기마다 퍼져나갈 것이다”고 평했다.
관람객들 역시 김병종의 그림에 푹 빠졌다. 마치 그림이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는 관람객도 있었고, 동화 속 그림을 보는 것 같다는 소회도 밝혔다. 어떤 관람객은 ‘달빛예수’작품 앞에서 기도를 하며 눈물까지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시회는 2월16일까지 계속된다(전주 교동아트미술관·스튜디오는 2월2일까지).
● 김병종 교수 약력
△1953년 남원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성균관대 동양예술 철학박사
△개인전= 2013 산수간(갤러리현대 본관),2009 길 위에서-황홀(갤러리 현대), 2004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광주비엔날레),1997 생명의 노래(프랑스 파리), 1994 생명의 노래(가나화랑), 1993 바보예수(독일 베를린), 1990 바보예수 (베즈티루르, 폴란드); 1990 바보예수, 흑색눈물(헝가리, 1989 바보예수(베를린)
△수상경력= 2004 제17회 대한민국 기독교 미술상, 1995 선 미술상, 1991 한국미술작가상, 1989 미술기자상, 1981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저서= 중국회화연구, 화첩기행1,2,3,4,5권
△주요경력= 대한민국미술대전·동아미술제·MBC미전·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대 미술대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