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는 일

문단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문단인구 1만 명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작가가 되는 관문은 다양하다. 문예지의 추천이나 문학상 공모, 개인 작품집 발간을 통해서도 등단의 자격은 주어진다. 그러나 문단의 인구를 급속도로 늘린 주체는 역시 문예지들이다. 출판계 불황에서도 쏟아져 나온 크고 작은 문예지는 ‘공모’나 ‘추천’이라는 형식으로 적지 않은 문인들을 만들어냈다. 작가들의 양적 성장을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지나치게 ‘등단’ 카드를 남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문예지의 ‘등단카드’(?) 남발이 문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폐해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작가가 되겠다는 과도한 열망이 문학의 진정성보다도 우선되는 환경이 지속되면 문학의 건강성은 갈수록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문단등용문의 최고로 주목받는 신춘문예의 존재는 의미가 크다.

 

새해 첫날 일간지들이 앞 다투어 내놓는 신년호 특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는 것은 역시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자들의 이야기다. 신인들의 참신한, 더러는 아주 실험적인 문학적 도전도 그렇지만 신춘문예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그들이 보내야했던 오랜 고투의 생생한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가 우리나라에 처음 시작된 것은 1925년, 동아일보가 문학작품을 공모하면서부터다. 올해로 90주년을 맞는 신춘문예는 그 짧지 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새해 초입, 신춘문예 터널을 지나온 신인작가들의 등장이 화려하다. 한 출판사는 벌써 올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을 모은 시집을 펴내 ‘신춘문예’를 갈망하는 문청(문학청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스로를 치열하게 갈고 닦으며 습작시간을 보낸 ‘문학청년’들의 문단입성으로 한국문학계는 더 풍성해졌다. 그만큼 좋은 문학작품들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줄 터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의 문학 현실은 여전이 강퍅하다. 적지 않은 문예지가 쏟아지지만 정작 전업 작가로만 살면서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신춘문예 당선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들의 미래가 우려되는 것은 그래서다.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전업 작가가 건재하지 못한 현실은 안타깝다. 문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