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에티켓

▲ 객원 논설위원
“도서관은 장구한 세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어떤 비밀스런 목적에 따라 탄생했다. 도서관 사서만이 선임 사서로부터 비밀을 물려 받았고 그리고 이 물려받은 비밀을 그의 생전에 다시 보좌 사서에 전한다. 사서만이 책들로 이루어진 미궁의 비밀의 알고 있을뿐 아니라 그 가운데를 돌아다닐 권리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저서 〈장미의 이름〉에서 중세(中世)도서관에 대해 정의한 말이다. 그는 도서관은 신(神)의 하나의 대체물로서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전지적(全知的) 존재인 고로 그는 일종의 거대한 도서관이라고도 말했다.

 

도서관은 신처럼 성스러운 존재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이처럼 거의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올려 놓은 에코의 중세 미학적 해석을 머릿말로 인용한 것은 솔직히 내 지적 허영심(?)의 얄팍한 객기에 다름 아니다.

 

노년에 접어들어 내 생활의 중요한 일과는 도서관을 찾는 일이다. 특별한 용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출퇴근(?)을 반복한다. 학창시절 탐독했던 고전들을 다시 읽거나 책값 부담이 만만치 않은 각종 신간들을 접할 수 있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실 인문 교양을 위한 일종의 사치이자 정신적 여유로움과 지적 도락이라고도 할 이런 책읽기는 노년층에게는 육체적 건강 못지 않게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차원에서 퍽 바람직한 습관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는 일주일에 평균 한두 권 정도의 인문 교양서를 읽고 문학전집류나 베스트셀러 등의 리스트를 작성해가며 독파한다. 독서 방법도 닥치는대로, 관심가는대로, 평소 머릿속에 담아뒀던 고전들을 골라 다독(多讀)하는 편이다. 뒤늦게 돋보기 고쳐 쓰며 책갈피 넘기는 꼴을 보고 뒷말하는 친구들이 없지 않지만 독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의 소름 끼치는 희열을 생각하면 전혀 괘념할 폄훼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전북지역에 현재 공공도서관과 지역단위 작은 도서관 등을 합쳐 126개소의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인구 1만5000명 당 1개꼴로 전국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도서관의 기능은 단순히 책을 대출하거나 열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와 교양서비스 공간으로 기능하는 추세다. 당연히 이용객 수도 증가일로다. 요즘같은 방학시즌에는 초중고생은 물론 대학생, 일반인, 가정주부 , 노년층 등 열람석이 미어 터질 지경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회는 활기 넘치고 밝은 사회다. 그런데 이쯤에서 꼭 짚고 넘어 가야 할 일이 있다.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말이다.

 

우선 열람석 분위기가 대부분 너무나 산만하다. 휴대폰을 끄지 않아 벨소리가 정적을 깨는가 하면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여성들의 발걸음 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신문철이나 책장 넘기는 소리는 가히 폭력적(?) 수준이다. 복사기나 컴퓨터 이용 공간에서의 무신경은 또 어떤가. 이뿐이 아니다. 정작 심각한 것은 각종 책의 훼손이다. 대출된 책 가운데 찢어지거나 낙서 범벅, 음식물 묻기 등으로 못 쓰게 되는 책이 적지 않다. 일부 시사잡지같은 경우 관심을 끄는 특집 기사 등을 통째로 오려가는 얌체들도 있다. 이래서야 어찌 도서관을 이용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으며 민주 교양시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예절 지키며 경건하게 이용해야

 

시성(詩聖) 단테는 그의 신곡(神曲) 마지막 부분에서“하느님의 시야는 마치 하나의 책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도서관 이야기에 에티켓 좀 강조하다보니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자고 이래 성스럽게까지 여겼던 도서관인만큼 경건하게 이용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