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본 '변호인'

법과 원칙을 무기삼아 '변호인' 같은 감동주는 허구 아닌 실화 제작을…

▲ 유길종 전북지방변호사회 회장
영화 ‘변호인’이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30여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필자는 이 영화가 별로 재미없을 줄 알았다. 노 전 대통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필자로서는 그를 배경으로 하였다는 영화에 눈길이 갈 리 없었다. 하도 여러 사람이 잘 만들어졌다고 하기에 필자도 보게 되었다. 송강호의 연기는 여전히 일품이었고, 그간의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이던 오류도 거의 없었다. 인권에 눈을 뜬 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현실에 맞서는 모습과 줄거리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변호인’의 감동을 깎아내리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흥행성공의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은 실화와 허구의 버무림이다. 이 영화는 맨 처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 드립니다’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실화가 소재이지만 대부분이 허구라고 생각하면 될 일인데,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의 대부분이 실화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무엇이 실화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헷갈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마치 다큐멘터리인양 울거나 감동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여 보수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송우석이 부산상고를 나온 판사 출신 변호사이고, 그가 조그만 요트를 갖고 있으며, 부림사건의 변호인이라는 것은 노 전 대통령과 같다. 그러나 영화 속 부림사건에 관한 내용은 허구와 실제가 뒤엉켜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림사건은 2009년경의 재심에서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이 그대로 유지된 바 있고, 피고인들이 다시 제기한 재심의 결과는 올해 2월 13일에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현재까지 이들의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는 여전히 유죄로 남아 있으므로, 경찰과 검찰이 순진한 대학생을 불법감금과 고문으로 용공세력으로 몰았다는 것은 불확실한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수기에서 부림사건의 피고인들이 재판받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들에게 감명 받아 그들의 관심사에 차츰 눈을 뜨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보면 부림 사건의 피고인들은 적어도 이른바 ‘의식화’된 사람들이었음이 틀림없고, 영화에서처럼 이들이 좌경 의식화와 전혀 무관한 순진한 대학생, 노동자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시중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사회과학 서적들을 엉터리 감정을 동원하여 불온서적 내지 이적표현물로 모는 장면은 실제로 많이 볼 수 있었던 일이고, 그런 식의 재판 모습은 지금 보아도 창피하다.

 

부림 사건의 피고인들에게 수사기관이 영화에서 묘사된 그런 고문을 하였는지 서로 주장이 달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군부독재 시절에 온갖 고문이 횡행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주장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영화에서는 피고인들을 치료해 준 군의관이 증인으로 등장하여 고문사실을 확실히 증언해 주었지만, 실제로 그런 군의관은 없었다니 유감이다. 고문의 유무를 떠나 과거 이른바 공안사건에서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용기 있고 정의로운 재판을 하지 못하였고, 그런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어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법정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불편함을 느꼈었다. 그 영화들의 내용이 조악하고 실제 사실과는 다름에도 영화 관계자들이나 일부 부류가 그들 나름의 목적을 위하여 영화의 내용이 사실인 듯이 주장하고, 대중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면 한심했다.

 

그런데 ‘변호인’은 느낌이 다르다. 영화로서 짜임새가 있고, 송강호의 연기가 일품인 탓도 있지만, 변호사가 가져야 할 덕목과 자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돈 많은 기업인이 제시하는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몰상식과 불의에 대항하는 길을 선택했고, 치열하게 그리고 정열적으로 그 길을 갔다. 요즘 변호사업계가 가뜩이나 어려워지면서 경영과 영업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현실이 되었는데, 영화 ‘변호인’은 변호사가 그저 상인이 아니라 법과 원칙을 무기로 불의에 맞서는 정의감을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변호인’ 같은 변호사 영화, 기왕이면 허구가 아닌 실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길종 회장은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대전고등법원 판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