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지난 1890년 전후로 추정된다. 특히 커피가 왕실에 보급되면서 고종을 비롯한 왕족과 대신들의 기호품으로 사랑받았다.
이후 커피는 다방문화의 화수분이 됐고, 지난 1976년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처음 출시하면서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1970년대 말 등장한 커피자판기도 시장규모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세계적인 원두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가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 첫 한국매장을 개설하면서 국내 커피시장은 커피전문점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에서야 원두커피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전북지역 커피 명인들이 차츰 등장한 시기도 2000년 이후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로 대변되는 원두커피 시장이 최근들어 얼마나 급속도로 팽창하지는 보여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바리스타 등용문 가운데 한 곳인 한국커피협회의 경우 지난 2006년만 해도 전북지역의 바리스타 인증시험 응시자는 30명에 불과했던 반면 지난해는 2000명을 넘겼다.
굳이 바리스타학원에 등록하지 않아도 30~40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라떼아트를 비롯한 소규모 교육도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주기전대학 등에도 관련 학과가 개설되면서 제대로 된 바리스타들도 다수 배출되고 있다.
이처럼 수요가 급증하면서 커피 장인들의 위상과 몸값도 치솟고 있다. 일부 바리스타는 전국의 최고수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내공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북지역 바리스타 1세대는 전주시 중화산동의 컬러인커피 최재영 대표와 전주시 덕진동의 커피발전소엘오지 강봉호 대표가 꼽힌다.
전북대 공대 출신인 최재영 대표는 일찌감치 서울지역 명인들을 찾아다니며 제대로 된 커피만들기에 열중했다. 우유를 1t 단위로 배달시켜 연습을 반복했다는 일화와 함께 전국에서 손꼽히는 카페라떼 아티스트로 불린다. 최재영 대표는 현재 창업지원은 물론 전문점에 로스팅 원두를 공급하는 등 사업영역을 키우고 있다.
강봉호 대표도 지역내에서 원두커피 시장을 키우는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전주시 서서학동의 인더쉘 박순철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바리스타 공인교육기관인 전주CBSC바리스터학원 대표이기도 한 박순철 대표는 미국커피스페셜티협회에서 주관하는 큐그레이드(향미평가사) 및 유럽커피협회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한국커피협회의 수석실기심사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박 대표는 교육기관의 1층에 매장을 열고, 전북에선 거의 유일하게 커피매니아들에게 커피 원산지별 특성에 맞는 로스팅 원두를 제공하고 있다.
전주시 다가동의 커피멜로디는 커피로스팅 전문점이다. 유럽에서 음악을 공부한 유학파인 장용철 대표는 지금은 커피에 빠져 ‘커피볶는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다.
군산 은파유원지 인근에 자리잡은 산타로사는 멋진 경관과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유승민 대표는 비교적 늦게 커피공부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앞서나가는 커피사업가가 됐다. 국내 유명 강사들을 초빙해 세미나를 개최하는 군산지역 커피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전주시 중화산동의 더블유(대표 강용철)도 커피명가로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지역에서는 드물게 세미나실을 마련하는 등 차별화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커피전문점이 한집 걸러 들어서면서 일각에서는 ‘커피전문점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원두커피 시장은 성장의 여지가 많다”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다만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치달을수록 차별화와 전문성을 갖춘 장인과 커피전문점은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는 관측은 유효해 보인다.
● 맛있는 커피의 조건 - 볶은 원두 즉석에서 갈고 바로 즐겨야
흔히 좋은 커피에는 농익은 과일의 산미가 흐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전주기전대학 여영규 교수는 “좋은 커피는 초콜릿같은 바디와 과일같은 산미가 있어야 한다”면서 “로스팅이나 블렌딩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커피도 과일입니다. 과일에는 태생적으로 산미가 깃들어 있어요. 과일의 새콤함이 단맛을 끌어내는 법입니다. 생두를 제대로 로스팅하면 단맛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커피는 맛과 향을 한꺼번에 즐기는 음료”라는 그는 “과일향이나 캐러멜향 같은 향기를 즐기면서도 바디감이나 수렴성(astringency)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가정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는 원두보관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커피는 생콩 상태에서는 보관이 쉽지만 볶은 상태의 커피는 사정이 다릅니다. 밀봉한 볶은 원두를 개봉하는 순간 산소와 만나면서 향기는 날아가고, 산패가 일어납니다. 로스팅한 커피는 개봉하면 가능한 빨리 소비해야 합니다. 특히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정에서는 큰 용량의 원두 구입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는 “개봉한 볶은 원두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 고유의 맛은 50% 이상 변했다고 봐야한다”면서 “매번 필요한 만큼 즉석에서 갈고, 바로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