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것,//…흰 가슴의 날개로 제 몸 매질하여/ 구만리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가는 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 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이해리,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그리움에 사무쳐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던 철새들의 보복 혹은 반란이 시작되었다. 고창 부안에 이어 시화호와 김포 등 수도권에서도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전남 해남의 농가에서도 오리가 집단 폐사했으며 영암호에서도 왜가리와 청둥오리의 사체가 발견되는 등 고병원성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전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발병의 원인이나 지역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방역당국은 재빠르게 철새 탓을 하고 나섰다. 철새가 감염 주체인지 아니면 그 피해자인지 애매한 점이 한 둘이 아닌데도 애먼 그들을 속죄양 삼아 자신들의 잘못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감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철새가 주범이라면 아직 그들과 소통방법을 알지 못하고 통제수단도 확보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철새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월동할 곳을 찾아 이동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자연의 섭리, 욕심 때문에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대응에 재앙의 원인이 있었다!
얼마나 먹어치우겠다고 그 많은 오리들을 집단사육하고 얼마나 또 돈을 벌겠다고 수천 수만 마리의 닭들을 한 군데 가두어 키운단 말인가? 정상적인 번식은 물론 활동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직 인간의 식탐과 돈벌이를 위해 키워지는 닭과 오리, 이미 그 환경에 병의 원인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집단발병의 재앙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철새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고 봄이 오면 녹아내리는 것과 같다. 수도관 동파되었다고 겨울을 탓할 수는 없다. 언덕이 녹아 무너져 내렸다고 봄을 핑계 삼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면 이에 대비한 조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력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무소신의 정치꾼들을 자신들에 비유하는 것에 모욕감을 느껴오던 철새들, 이 억울한 혐의에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창오리들의 집단자살! 분노의 항의인가? 보복의 시작인가?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