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청춘의 찰나

불평 투성이였던 청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

▲ 김주희 토요문화학교 코디네이터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똑같은 깊이로 또는 길이로 보내지는 않는 시절, 청춘.

 

우리는 무얼 하며 보냈을까? 혹은, 무얼 하며 보내고 있을까? 보통은 10대에서 20대 정도의 젊은 나이를 일컬어 청춘이라 부르지만, 이에 대한 이견을 내놓는 세 남자가 있다. 이름 하여 청춘 사진관!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은 나에게, 이들의 청춘 스토리가 더할 나위 없이 큰 자극제가 되었다. 스튜디오, 포토그래퍼, 이런 세련된 이름들 놔두고 구지 ‘사진관’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듯싶다. 그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 번 이해해 보자는 취지로, 필자도 노트와 연필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귀찮아져보기로 했다.

 

말은 사진관이긴 한데, 사실 이 세 남자의 사진관은 사진관이라 부를만한 공간도, 그럴싸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이상한 사진관이다.

 

세 남자 자체가 청춘사진관의 실체이며 그저 나이만으로도 청춘이기에 충분한, 20대 대학생들이다.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만나게 되었고, 마음 잘 맞는 청춘들끼리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작당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 ‘거창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세 청년들이 카메라라는 작은 기계 하나로, 사람들의 어떤 찰나를 담아낸다는 것. 청춘 속에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이 있고, 돌아보면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 순간들이지만, 꼭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모순이 있다.

 

그런 ‘찰나’를 사진으로 담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을 되돌려주는 이 세 남자의 청춘의 시절. 얼마나 신나는 청춘들인가. 청춘사진관의 활동에 동경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청춘을 더 신나게 즐기지 못한 데에 대한 반성이라고 하겠다.

 

누구나 머릿속에 한 장면쯤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었던 열아홉 살의 졸업식, 어렵게 공부한 끝에 선생님이 되어 첫 제자들을 만난 날, 살면서 흔하게 다가오지 않는 감동의 순간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지나가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의 흐름 위에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필자가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대학시절 풍물패에 들어가 첫 공연을 했던 날이다.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장구를 둘러메고 뭐가 그리 신났는지 벌건 얼굴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나를 보면서, 객석에 있던 엄마는 조용히 울었다고 했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너무 예뻐서.”란다. 그 때 눈물 그렁했던 엄마의 눈으로, 나의 모습을 다시 담아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다시 못 할 것 같은, 그 때 그 순간의 나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었던 그 표정이, 내 청춘의 표상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불평 투성이었던 나의 청춘.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미래가 빤히 보이는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고 절망적인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거라고, 이문세 아저씨도 노래하지 않던가. 같은 청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또 아깝게 흘려보냈던, 우리의 청춘에게도 이제는 고하고 싶다. 좀 더 용기를 내 보자고,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청춘의 시절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 김주희 코디네이터는 문화재청 무형문화유산 온라인전수조사 보조연구원, 전북발전연구원 전라북도 관광객 실태조사 보조연구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