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얼 하며 보냈을까? 혹은, 무얼 하며 보내고 있을까? 보통은 10대에서 20대 정도의 젊은 나이를 일컬어 청춘이라 부르지만, 이에 대한 이견을 내놓는 세 남자가 있다. 이름 하여 청춘 사진관!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은 나에게, 이들의 청춘 스토리가 더할 나위 없이 큰 자극제가 되었다. 스튜디오, 포토그래퍼, 이런 세련된 이름들 놔두고 구지 ‘사진관’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듯싶다. 그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 번 이해해 보자는 취지로, 필자도 노트와 연필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귀찮아져보기로 했다.
말은 사진관이긴 한데, 사실 이 세 남자의 사진관은 사진관이라 부를만한 공간도, 그럴싸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이상한 사진관이다.
세 남자 자체가 청춘사진관의 실체이며 그저 나이만으로도 청춘이기에 충분한, 20대 대학생들이다.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만나게 되었고, 마음 잘 맞는 청춘들끼리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작당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 ‘거창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세 청년들이 카메라라는 작은 기계 하나로, 사람들의 어떤 찰나를 담아낸다는 것. 청춘 속에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이 있고, 돌아보면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 순간들이지만, 꼭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모순이 있다.
그런 ‘찰나’를 사진으로 담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을 되돌려주는 이 세 남자의 청춘의 시절. 얼마나 신나는 청춘들인가. 청춘사진관의 활동에 동경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청춘을 더 신나게 즐기지 못한 데에 대한 반성이라고 하겠다.
누구나 머릿속에 한 장면쯤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었던 열아홉 살의 졸업식, 어렵게 공부한 끝에 선생님이 되어 첫 제자들을 만난 날, 살면서 흔하게 다가오지 않는 감동의 순간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지나가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의 흐름 위에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필자가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대학시절 풍물패에 들어가 첫 공연을 했던 날이다.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장구를 둘러메고 뭐가 그리 신났는지 벌건 얼굴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나를 보면서, 객석에 있던 엄마는 조용히 울었다고 했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너무 예뻐서.”란다. 그 때 눈물 그렁했던 엄마의 눈으로, 나의 모습을 다시 담아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다시 못 할 것 같은, 그 때 그 순간의 나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었던 그 표정이, 내 청춘의 표상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불평 투성이었던 나의 청춘.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미래가 빤히 보이는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고 절망적인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거라고, 이문세 아저씨도 노래하지 않던가. 같은 청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또 아깝게 흘려보냈던, 우리의 청춘에게도 이제는 고하고 싶다. 좀 더 용기를 내 보자고,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청춘의 시절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 김주희 코디네이터는 문화재청 무형문화유산 온라인전수조사 보조연구원, 전북발전연구원 전라북도 관광객 실태조사 보조연구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