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담아 주목받는 것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다. 이 의궤는 축제 준비부터 모든 행사의 진행상황, 행사가 끝난 후의 일처리까지 8일 동안의 행적을 여덟 권의 책에 정교하게 기록하고 있다.
1795년,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축제를 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성까지 이르는 8일 동안의 축제에는 수행원만 6,000여명, 말 1,400필, 총 예산 10만 냥(현재의 화폐가치로는 70억 원 정도)이 소요됐다. 조선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행렬이었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나에게 깊은 뜻이 있다”는 정조의 뜻에 따라 준비되었던 이 축제는 아버지(영조)에 의해 뒤주 속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 그의 죽음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아픈 상처가 녹아있다. 정조는 17776년 즉위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동안 당파와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했다.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게 하고 다양한 서적을 간행해 학문을 진흥시킨 왕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의 소망 또한 ‘백성들이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정조는 그 많은 예산과 인력과 노동을 투자하며 축제를 벌였을까. 의궤에 그 답이 있다.
이 축제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 정조는 가난한 이들에게 쌀과 소금을 나눠주고 직접 술잔을 내렸다. 특정한 세력들이 누리는 권력과 이익을 뺏어(?) 백성들과 나누기 위한 축제였던 것이다. 의궤를 통해 만나는 정조의 이야기는 우리 현실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침 지난해 가을, KBS가 ‘의궤, 8일 동안의 축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의궤를 3D영상으로 복원한 대작의 감동과 정치인의 올바른 철학이 주는 울림이 깊다.
선거철이다. ‘주민과 지역을 위해 나선다’는 후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이 프로그램 ‘다시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