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은 ‘목어(木魚)’에서 유래했다.
큰절에 가면 종루에 나무로 된 기다란 물고기 모양의 목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운데에 긴 구멍을 내고 있어 목탁채로 두드리면 구멍 안에 소리가 울려 목탁 특유의 음향이 새어 나온다.
불전에서 행하는 제반 의식은 물론 독경을 할 때와 대중에게 공양 시간이나 운력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때 사용한다. 목어가 처음에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진데 대해서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덕이 높은 스님이 가르침을 주고 있는 제자 중 유독 한 제자만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
이에 스승은 신통력으로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물속에 던졌다.
하지만 제자는 참회는 커녕 물속에서 더 재미있게 놀고만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등에다 커다란 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그랬더니 물고기는 헤엄도 멋대로 칠수가 없을뿐더러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후회를 한 물고기 제자는 어느날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스승은 가여운 마음에서 수륙재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날밤 스승의 꿈에 제자가 나타났다. 다음 생에서는 참다운 수행의 길을 걷겠다며, 자신의 등에 난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막대로 쳐 주기를 간청했다. 스승은 그의 말대로 물고기에 난 나무로 물고기 모양의 법구를 만들어 치면서 수행자들에게 경각심을 줘 깨달음을 갖게 했는데 점차 물고기 모양이 사라지고 둥글게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의 목탁이 됐다. 목탁은 그것을 두드림으로써 수행자가 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 드는 것을 경계하고 그 소리로 하여금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덧붙여 사회가 바로 되도록 이끄는 공기(公器)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흔히 언론을 ‘사회의 목탁’이라고 한다. 언론이 사회의 불합리한 문제를 널리 알려 환기시키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에 비춰볼때 과연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익산사회에서의 최근 언론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에게 일단 되물어 보니 더욱 자신할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 앞선다. 언론의 본령인 사회의 목탁으로서 제 역할을 다 했는지 아니면 독이나 되지 안 했는지.
더구나 지역언론의 역할과 책무가 날로 제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망국적인 지역사회 분열과 반목을 치유하는데 적극 발벗고 나섰고, 시민 화합과 소통, 지역발전 등을 앞당기는데 최선을 다 했는지.
오히려 그 어떤 의도를 갖고 오히려 이를 조장하거나 권력의 무기가 되어 약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는지 한편으론 무척 우려도 된다.
사실 지역언론이 시민과 호흡을 같이 하는 실익적인 지역 대변자 구실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한다면 설 자리가 없다. 시민을 위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익산의 목탁’이 될 자신이 없다면 더 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6·4 지방선거를 앞둔 익산지역 언론이 보다 청명하고 밝은 목탁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더욱 쫑긋 세우고,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혜안을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