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김제시 용지면 전북지역 제5호 ‘동물복지 축산농장’인 ‘행복한농장’으로 가는 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최근 이 일대의 한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탓에 거점 소독장소가 4곳으로 늘어났고, 광역소독차량이 용지면 일대를 돌며 연신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식 구형 시설을 갖춘 가금류 농장들 사이에 위치한 행복한농장은 AI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을 연상케 했다.
농장 입구부터 차량 및 사람에 대한 소독기가 설치돼 있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됐고, 축사는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져 AI 바이러스를 원천봉쇄했다.
반면 축사 안 환경은 외부의 난리와는 다르게 고요했다. 1514㎡ 면적의 축사 내부에는 모두 1만500여마리의 산란계가, 폐쇄형 케이지가 아닌 깔짚과 모래 바닥에서 목욕을 즐기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재 행복한농장에서는 동물복지농장 인증기준(㎡당 성계 9마리)보다 적은 ㎡당 7마리의 산란계(성계)가 사육되고 있다.
축사에 설치된 조명도 매일 8시간 이상의 명기(明期)와 8시간 이상의 암기(暗期)가 반복되도록 자동으로 조절돼 닭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 양계·산란계 농장에서는 모조리 닭의 부리를 잘라 서로 쪼지 못하게 만들지만, 이곳의 닭 부리는 모두 온전했다.
편안한 환경 때문인지 닭과 농장 주인인 이제철씨의 관계는 친숙해 보였다. 축사 문을 열자 수많은 닭들이 이씨에게 다가왔고 그 중 한 마리가 알을 줍던 그의 품에 날아와 안겼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을 받으려면 80여개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비용도 비닐하우스식 구형 시설보다 7~8배 가까이 더 들어간다. 공장식 축산 환경이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동물복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친환경적으로 닭을 사육하면 AI에도 강할 뿐만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면서 “소비자들도 동물복지농장에서 나온 달걀을 구입할 때 ‘내 몸에 좋기 때문에 구입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소비한 금액이 동물 복지를 위해 쓰인다’는 마음으로 구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I 사태에 대해 말을 건내자 이씨의 표정은 굳어졌다. 최근 충북 음성에 있는 국내 1호 동물복지 축산농장의 닭들이 살처분된 일이 자기 일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자식처럼 키우던 닭을 AI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죽이는 심정은 정말 참담할 것이다”면서 “특히 일반 사육방법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도 일반 농가와 비슷한 수준의 보상이 이뤄진다면 동물복지 농장주들의 시름은 더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 동물복지 축산농장은?
동물복지 축산농장 지정은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동물에게 쾌적한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해 건강한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현재 전국 46개 농장이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지정된 가운데, 전북 지역에는 남원 3곳, 무주 2곳, 김제 1곳 등 모두 5곳의 산란계 농장에서 7만5000 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