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작은 영웅 빅토르 안

▲ 김재환

나는 자칭 스포츠 마니아다. 요즘 밤낮이 뒤바뀐 채 제22회 소치 동계올림픽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땐 아픈 허리 때문에 목발에 몸을 의지하며 전국 경기장을 돌며 관람한 기억이 생생하다. 값비싼 입장권을 구입하고 휴가를 냈었다.

 

동계올림픽 개막 전부터 불운한 예감이 감지되고 있었다. 근래 우리 빙상경기의 주목을 받는 여자피겨선수 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등 4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었다. 쇼트트랙의 최강국인데도 쇼트트랙 선수들에겐 매스컴에서 홀대하는 느낌이었다. 목표는 금메달 4개 이상, 종합순위 10위 이내. 종전 동계 올림픽대회 때보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목표치가 낮아 ‘무슨 변고가 있구나!’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쇼트트랙이 침몰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부딪치고 넘어지는 반복되는 레이스, 왜? 작전을 바꾸지 않고 매번 뒤따라 달리다 추월하는 작전만 시종일관 고수하는지 답답하기만 하였다. 코치진이 어련히 알아서 하였겠지만 결과는 굴욕의 참패였다. 운동경기란 지는 해가 있으면 뜨는 해가 있듯이, 비운의 스타가 있으면 그에 대신하여 어부지리 행운의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어느 대회보다 이변이 다수 속출하였다. 흑해 연안 휴양도시 소치의 따뜻한 날씨 탓에 연약해진 빙질의 탓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주최국 러시아를 제외하곤 참가국 대부분 비슷한 여건 속에 경기가 치러진다.

 

빅토르 안 선수가 월등한 기량으로 1,000m를 우승한 뒤 경기장 차디찬 빙판에 엎드려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러시아 국기를 들고 세러머니를 할 때는 만감이 교차 되었다.

 

우리나라는 노메달. 태극기가 게양되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부문 최초의 금메달과 동메달을 러시아에 선사한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영웅의 칭호를 받으며 비운의 스타로 거듭났다. 앞으로 몇 개나 더 많은 메달을 제2의 조국 러시아에 바칠까? 부러움 뒤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왜 한국의 안현수가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되었을까?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의아해 한다.

 

3년 전 러시아로 귀화한 사실을 매스컴은 매국노라 폄하하며 짧게 보도했었다.

 

약관 안현수 선수는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제1의 조국, 대한민국에 바쳤다. 세계 7위를 달성 하는데 최고 수훈자였다.

 

그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46개의 금메달을 조국에 바친 작은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국 대한민국은 처참하게 그를 짓밟아 버렸고 부패한 스포츠계의 희생양이 되었다.

 

미국이나 선진 유럽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한때 우리의 적이었던 러시아를 택한 이유는 뭘까?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할 일이다. 우리 한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이기에 혈연, 지연, 학연에 집착함이 어느 민족보다 강한 민족이다.

 

오래전 40대 중반, 해외여행을 하면서 내 나라가 싫고 정권이, 정부가 하는 일들이 하도 가소로워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영재교육 시설이 빈약하다. 각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까지는 본인과 가족의 희생이 뒤 따른다. 어느 경지에 오르면 창피 하게도 그제야 대한의 아들딸이라며 국가가 야단법석을 떤다. 잘못된 교육정책, 나라를 병들게 하는 고질적이고 암적인 망국의 병폐이다.

 

학연, 지연, 혈연, 아무리 문화적 유산이라 하지만 스포츠에선 절대 배제 되어야 한다.

 

스포츠맨십이 무엇 인가? 정정당당이다. 스포츠 스타는 일당천의 외교관 이상이다.

 

모든 일에 과정도 중요하지만 스포츠에선 결과를 더 중시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어리석은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겠다. 러시아를 제2조국으로 선택한 안현수 선수를 다시 품으려는 것은 안선수에 대한 모독이다. 빅토르 안이 다시 안현수는 될 수 없다.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일을 한국 스포츠 발전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국을 버린 아픔을 이기고 상처를 잘 치유하여 대성을 빈다. 목구멍이 씁쓸하다.

 

△수필가 김재환씨는 월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문인협회 진안지부 회장,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