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신동엽시인을 좋아했을 뿐이다. 도시문명의 껍데기에 취해 ‘항아’의 흙가슴을 잊어버리는 삶은 경계하자 했던 것이다. 텃밭에 매실나무를 심은 것도 제초제와 농약으로 범벅된 차수성(次數性)적 ‘농사업’의 폐해를 조금이나마 피해보자는 뜻이었다. 매실청 우려내게 된 것은 동의보감 때문이고 매실주 담은 것은 술을 탐하는 오랜 습속의 자연스러운 발로.
고향집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연로하신 부모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것. 하다 보니 애정이 집착이 되고 그러다가 감히 전원생활을 운위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밭이건 집이건 소소하게 손볼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당연 손발이 바빠지고 머리 또한 ‘교수업가(敎授業家)’의 그것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일. 군자불기(君子不器)를 되뇌며 많은 새로운 공부를 해야 했다. 업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업으로서의 공부 버릇이 힘을 보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고집 아니면 자존심이 여러 가지 불편함,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순박한 시골인심도 확인하기 어려웠고 맑은 공기도 축산 냄새에 묻혀 즐길 수 없었다. 다만 경천지 주변의 산책과 고성산 산행이 심신의 피로를 가끔 풀어주었을 뿐이다.
나무에 애(집)착을 갖기 시작한 것은 친애하는 친구가 집지을 때 쓰라고 많은 목재를 선물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을 활용해 서재를 멋들어지게 꾸며주는 목수의 손길을 보며 직접 하면 더 좋겠다! 결을 세우게 된 것이다.
처음 놀이 탁자를 만들 때만해도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도면 없이 머리만 굴리다 보니 그 작은 것 하나 만드는데 시행착오가 겹쳤다. 톱질 망치질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건방 떨다가 손가락을 다쳐 병원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마루 밑에 쌓여있는 나무들 보면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어 책읽기는 뒷전이요 음악감상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그렇게 하여 어쭙잖은 평상과 의자가 여러 개 탄생한다.
특히 최근 낡은 대문에서 해체한 나무로 아버님께서 만드신 대나무평상을 리모델링하고 새로 지은 목조주택에 어울리는 의자 두 개를 뚝딱 만든 것은 가슴 뿌듯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칠까지 마치고 매실주를 거푸 마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물론 새롭게 구입한 전기톱과 전기 대패 덕분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정년퇴임 후의 생활방편이 마련되는 것인가? 새로 만든 나무의자에 앉아 남산 바라보며 생각을 되작거려 보는 것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