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1〉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부패를 피하는 것은 부패하는 것들의 악취와 추악한 모습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건강과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들이라도 죽으면 그런 상태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밀론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었다 해도 죽으면 얼마 안 가서 해골이 되고 결국에는 최초의 자연으로 해체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체를 묘지로 보내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은 안색이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이는 마찬가지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 자체를 기피하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이 애착은 삶의 즐거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죽음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일 때, 죽음은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유언을 써놓는 것조차도 두려워하며 죽음에 사로잡히게 되고,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곱빼기 식사를 꾸역꾸역 집어넣을 수밖에 없게 된다.”
출처 : 2011학년도 연세대 수시모집 인문계 기출문제
〈제시문 2〉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걸쳐 유행한 탱화 가운데 하나가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이다. 저승을 다스리는 10명의 왕이 저승에 온 인간들을 이승에서의 잘잘못에 따라 벌주고 상 주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위 그림은 염라대왕이 인간 세계의 왕처럼 관을 쓰고 사모관대를 차린 신하와 신장(神將)들에 둘러싸여 재판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쪽에는 잡혀 온 죄인들이, 다시 말하면 죽은 영혼들이 죄에 따른 판결을 받고 절구에 찧어지는 형벌을 받고 있다. 다른 그림들에는 죽은 이들이 톱으로 켜지거나 펄펄 끓는 솥에서 삶기거나 무거운 돌에 깔리는 형벌을 당하는 무서운 장면들이 연출되어 있다. 가히 극단적 죽음의 공포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다.
14세기 고려 시대에 간행된 불교 설화집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에 나오는 〈하늘에서 태어난 죽은 아내〉라는 설화는 진법장이라는 인물이 죽은 아내를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 진법장은 수자리를 살러 갔다가 아내의 부고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죽은 아내를 만난다.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이미 죽은 지 며칠이 됩니다.”
순간 진법장은 가난뱅이들의 집 같은 여덟아홉 채의 집을 보았다. 진법장은 그중 한 구석진 칸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가 불려가게 되었다. 진법장도 그 뒤를 따라갔는데 소머리 탈을 쓴 옥졸이 아내를 쇠꼬챙이에 꿰어서 부글부글 끓는 확탕 속에 집어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확탕 속에 들어갈 때면 뼈와 살이 흩어졌고, 나올 때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옥졸은 그렇게 일곱 번을 반복한 뒤에야 다시 놓아주었다. 다시 만난 아내의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내가 진법장에게 말하였다.
“제가 당신의 후처가 되려고 전처를 죽였다고 하는데 제가 해친 것이 아닙니다. 낭군님 옷장에 오백 냥이 있고, 집에 소가 있는데 아마 천오백 냥은 될 겁니다. 시어머니와 의논하여 저를 위하여 《법화경》을 쓰는 데 공을 들인다면, 첩은 즉시 이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저의 이 말을 시어머니께 전해 주세요.”
〈하늘에서 태어난 죽은 아내〉라는 설화는 전처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후처가 《법화경》에 의지하여 구원을 받은 이야기이다. 진법장은 집에 돌아와 소를 팔아 종이를 사는데 나중에 아내를 만난 곳에 찾아갔더니 “그대의 부인은 어제 종이를 살 때 이미 하늘에서 다시 태어났노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런데 이 불교 설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진법장의 죽은 아내가 당한 지옥의 형벌이다. 이 형벌은 ‘확탕지옥’이다. ‘지장시왕도’에서 확탕지옥은 오관대왕(五官大王)이 다스리는 곳에서 시행되는 형벌로 표현되어 있다. 문학적 묘사와 그림의 표현이 일치되는 모습을 통해 이런 불교적 지옥 이미지가 고려와 조선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 (휴머니스트)
〈제시문 3〉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있는 과부가 남편도 없이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열두 살이 되어도 말을 못하고 일어나지 못하므로 사동(蛇童)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때 원효가 고선사(高仙寺)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아 예를 했으나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하였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는 좋다며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사복이 원효에게 계(戒)를 주게 하자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그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사복이 그 말이 너무 번거롭다고 하니 원효가 고쳐서 말하였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
이에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한다.
“지혜 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 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偈)를 지어 말하였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裟羅樹)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지금 또한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蓮花藏)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는데,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았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그 속에 들어가니 갑자기 그 땅이 합쳐져 버렸다. 이것을 보고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다.
출처 : 일연, ‘삼국유사’
■ 논제의 포인트 및 평기기준
■ 논술문을 6단 논법으로 재구성하기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제시문 1,2,3에 나타난 죽음의 태도를 비교하고, 죽음에 대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논하시오. (900자 내외)
2. 면접 논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를 찾아 친구들과 이야기해보자.
■ 쟁점 기출문제
2011학년도 연세대 수시모집 인문계 기출문제
문제 1
제시문 (가), (나), (다)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시오. (1000자 안팎)
문제 2
제시문 (가), (다) 각각의 입장에 근거하여 제시문 (라)의 실험결과를 해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쓰시오. (1000자 안팎)
■ 쟁점 관련 도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춤추는 죽음〉
■ 쟁점 관련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컬러풀〉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1. 학생 논술문
제시문 1에서는 죽음 자체를 아주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두려워하는 태도가 나타난다. 죽음을 ‘악취’와 ‘추악한 모습’으로 연결시키며 기피한다. 제시문 2의 경우 죽음 그 자체보다는 사후세계 중 하나인 지옥의 극단적 형벌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나타난다. 잘하면 상도 주고 구원도 받는다고는 하지만 제시문 2의 설화에서 실제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 죽은 아내가 가혹한 형벌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사후세계의 삶에 대한 보상보다는 지옥 이미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시문 3에서는 죽음을 겸허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죽는 것도~괴로우니라”와 “지혜 있는 범을~않겠는가” 등의 표현은 현실세계와 죽음을 연관시킴으로써, 삶과 죽음에 큰 경계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죽음을 삶과 같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죽음에 대해 우리는 그저 담담한 태도를 보이면 된다. 삶과 죽음을 특별히 구분하여 죽음을 극도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고, 제시문 3에서와 같이 삶과 죽음을 별다를 것 없이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제시문 1처럼 죽음 자체를 기피하거나 제시문 2처럼 사후세계의 부정적 모습에 집중하여 죽음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삶에 대해 무의미한 애착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 ‘곱빼기를 꾸역꾸역 넣는’ 등의 의미 없고 불안정한 행동 양상을 띠게 된다. 그건 남은 삶조차 아깝게 흘려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있는 것이며 막상 개인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론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우리는 더욱 더 담담함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의식 속의 공포가 자신을 억누른다면 그것을 의식의 장으로 끌어내어 의식 속의 담담함으로 이겨내고자 해야 한다. 그래야만 죽음에 대한 공포로 현실의 삶까지 흔들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백지현 ( 상산고 3학년 )
2. 교사 총평
이번 논술문의 주제는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이다. 흔히 죽음은 막연히 두렵거나 끔찍한 것으로 여겨져 사람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일부 티끌만 바라보고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논제에서는 여러 문헌이나 설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살펴보고, 우리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탐색해보고자 하였다.
- 독해력
전반적으로 세 개의 제시문에 대한 고른 이해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제시문 2에서는 사람들이 죽음을 삶에 대한 감계(鑑戒)의 수단으로 바라봄으로써, 죽음 이후의 징벌을 피하기 위해 현실 속에서의 자기 삶을 돌아보고 경계하게 된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겠다.
- 논리력
이번 논제는 먼저 제시문 1,2,3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다음으로는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절충 혹은 비판을 통해 죽음에 대한 수험생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반응과 혐오는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가중시킬 뿐이다. 제시문 2에 드러난 것처럼 죽음 이후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단속한다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벌을 받기 두려워 어떤 행동을 경계하고 피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마음껏 발현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죽음과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삶 이후에 죽음이 있고,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시작이 있음을 이해하며 자신의 삶을 보다 성숙하게 고양시켜 나가는 것이다.
- 표현력
전반적으로 논제의 방향을 제대로 짚어 자신의 생각을 펼쳐냈으며, 문장의 길이나 주술 호응에 있어서도 우수한 표현 능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담담함’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됨으로써 반복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신의 주장을 여러 번 같은 어휘로 반복해서 쓰는 것보다는 보다 다채로운 표현을 활용하여 자신이 논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를 깊이 있고 섬세하게 다루어나간다면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