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식인들의 고민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지난 2일 동경에서는 한 이색적인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의 〈한일 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하다〉(일본평론사)의 일본어 출판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초청 마련한 자리. 참석자도 평소 변호사를 따르는 소수의 한국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본의 진보지식인들.

 

임진왜란을 다룬 〈월하의 침략자〉, 일제의 식민통치를 고발한 〈백만 인의 신세타령〉,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까지, 일본이 가해자로 한국(조선)이 피해자로 진행된 역사적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꾸준하게 제작하고 있는 마에다 겐지 감독,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수차례 전적지 답사를 위해 내한한 바 있는 나까즈까 아키라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우리나라 신문에 동아시아 평화와 한일문제 등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와다 하루키 교토대학 명예교수, 수십 년 동안 대학 연구실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송환을 위해 발 벗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직접 모시고 전주를 방문하여 사죄의 고유문까지 낭독한 북해도대학의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 등,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대표적 지식인들 50여명이 참여했다.

 

모임의 성격상 저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찾았을 것인데 보이기로는 일본 대표적 진보지식인들의 단합대회 같았다.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된 축사도 개인적 덕담보다는 불편해진 한일관계와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4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려,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일 지식인들 노력의 당위성 등이 주를 이루었다. 평소 점잖고 수줍음 많은 마에다 감독의 축사는 반성과 단합을 촉구하는 웅변의 전형!

 

분위기로만 봐서는 이처럼 내로라하는 양심세력들이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그 타개책까지 모색하고 있으니 동아시아 평화든 민주주의 인권 문제든 이내 해결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를 취재하던 아사히신문의 사쿠라이 이즈미 기자는 전혀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내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세력이 극소수에 불과하며,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을 이을 후속세대가 거의 없다는 것. 일본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정치적 무관심의 덫에 걸려 있고 몇몇 극우의 젊은이들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바다 건너의 얘기만이 아니라는 점. 이 땅의 현실이요 고민이라는 점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