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을 말할 때 문화적 향유가 곧잘 척도가 된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근무처를 옮기는 경우 문화적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도시에 비해 전북의 중심지인 전주도 그렇지만, 전주 이외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 문화적 혜택에 목말라 있다. 그나마 시·군 자치단체별로 대형 문화시설을 잇달아 만들면서 문화적 공간이 많이 넓어졌다.
그러나 대형 문화시설이 곧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은 아니다. 문화시설을 채우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또 대형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도 작은 공간에 비해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사설 갤러리는 지역문화를 살찌우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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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W갤러리 | ||
전주 이외 지역에서도 근래 몇 년 사이 갤러리가 속속 생겼다. 익산 현대갤러리와 W갤러리, 군산의 정미술관, 완주의 오스갤러리와 삼례 VM아트미술관, 부안 휘목미술관, 무주 최북미술관, 김제 벽천미술관, 진안 용담호 사진문화관 등이 지역 문화의 텃밭으로 자리하고 있다.
농어촌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미술 향유층이 적기 때문에 갤러리만으로 수지타산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갤러리 대표들도 대부분 문화운동 차원에서 공간을 운영한다. 여기에 지역 친화적 작품 기획전과 지역민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획들을 고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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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 ||
익산 현대갤러리(관장 박현대)가 도내 갤러리 중 처음으로 지난 2006년 미술품 현장 경매에 나선 것도 지역의 활동 작가와 시민들을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2005년 개관한 군산정미술관(관장 정숙희) 군산의 특성을 살린 기획전으로 군산 문화를 일군다. 지난해 ‘군산굴기전’기획전을 가진 정미술관은 이달 말께 ‘군산별곡전’으로 지역팬들을 만난다.
군산·익산 이외 지역의 미술관은 지역의 문화향유층이 두텁지 않아 지역민 보다는 관광객들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완주 송광사 인근의 오스갤러리(대표 전해갑)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가수 조영남·최백호의 전시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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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정미술관 | ||
미술인 이문수 씨는 “골목, 동네의 문화가 살아야 지역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으며, 그 점에서 지역의 갤러리는 꼭 필요한 세포로 문화운동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고 갤러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의 자긍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서울 전시만을 중시하는 풍토를 꼬집었다.
■ "지역미술 살기 위해선 생활미술 발전시켜야"
- 익산 현대갤러리 박현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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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익산의 한 갤러리에서 옥션(경매)전을 가졌다. 익산 현대갤러리가 지역미술 발전을 기치로 걸고 시도한 도내 갤러리 사상 첫 공개 미술품 경매시장이었다. 작가와 미술 동호인들을 연결시키려는 갤러리의 시도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척박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1회성 이벤트로 끝났지만, 이 갤러리의 새로운 실험은 계속 이어졌다.
그 대표적인 게 지난해 결성한 ‘참미술인협동조합’이다. 갤러리 관장을 맡고 있는 박현대 씨(51)가 갤러리를 중심으로 30여명의 미술인들이 뭉쳤다. 전공 영역이나 동문 혹은 지연 중심으로 진행되는 전시나 교류전을 통한 단순한 친목활동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미술운동에 나선 것이다.
현대갤러리는 또 미술과 음악·문인들을 융합하는 기획으로 눈길을 끌었다.‘오늘은 달구지 타고 흰구름되는 날’이라는 이름을 건 이 이 기획은 역사 혹은 문화 현장을 탐방하고 그 결과물을 발표로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작은 갤러리에서 작가상을 수상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아름답고 좋은 작가상’을 제정해 3년째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박 관장의 지역문화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됐다. 지난 2003년 익산제일산부인과 지하에 30평 규모의 현대갤러리가 개관할 당시 익산지역에는 사설 갤러리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런 안타까움 속에 음악과 미술 등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홍성각 병원 원장의 지원과 박 관장의 의기가 통해 갤러리 개설로 연결됐다. 박 관장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월간미술 리포터로 활동하는 동안 여러 작가들을 만나며 지역문화발전에 나름의 사명감도 작용했다.
그가 갤러리의 모토로 삼은 것은 ‘함께 하는 美’다. 지역의 미술인과 미술애호가들의 소통의 장으로 갤러리를 생각하면서다. 그의 모토는 지금도 유효하며, 갤러리를 매개로 한 공동체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매년 10여 차례의 기획전 역시 사회적 상황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 미술인과 미술애호가들이 공감하는 메시지를 담아왔다. 그러나 10여년간 열심히 뛰었지만 갤러리가 지역의 미술발전에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 스스로도 회의적이다. 미술분야는 정적이어서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고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에 국한하지 않고 갤러리 밖을 바라보게 됐다.
협동조합을 통해 요양시설이나 공공시설 등 작품을 전시할 공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진안미협지부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진안문화원 등에서 이미 2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역의 미술이 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관람만이 아닌, 생활미술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미술 관련 취미반도 늘어나야 하고, 시각적 요소만이 아닌 체험이나 세미나·강연회 등 복합적인 지원활동으로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안목을 넓혀야 지역미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