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실 귀중본 보관한 장서각
1908년 고종이 궁궐 안의 수많은 서적들을 수집해 황실 도서관 건립을 구상하고 청사진을 그렸으나 일제 침략으로 일시적으로 좌절됐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쳐 1918년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에 건물을 짓고 조선왕조실록 등 왕실의 귀중본을 보관한다는 의미로 장서각이라는 현판을 내걸을 수 있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이 조선왕조실록(무주 적상산 사고본)을 강탈해 가서 이것을 대본으로 국역작업에 착수해 〈리조실록〉을 간행했다. 강탈해가는 와중에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성종실록〉(권 3-5) 한 책을 흘리고 말았는데 그 한 책이 지금 장서각에 남아 지난날의 수난사를 웅변하고 있다.
현재 장서각에는 크게 두 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소장돼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의 각종 행사기록인 의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학서적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의궤는 조선시대의 국가 및 왕실 행사를 기록한 자료로 오늘날 영상 자료처럼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각자료다. 의궤는 역사기록물로서 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한류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색감도 찬란한 의궤 중 숙종임금과 인현왕후 민비의 가례(혼례) 반차도가 주목된다. 반차도란 행사를 치를 때 참석자들의 위계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표시한 그림으로, 왕실에서 행사가 있으면 미리 반차도를 그려 국왕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준비가 철저해 숙종과 인현왕후의 가례 때에는 무려 사전 예행연습을 세 차례나 거행했다고 전해지며 19장면으로 구성됐다.
1613년 간행된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은 한국 의학사에 빛나는 명저다. 〈동의보감〉의 편찬자는 전설적 명의 허준이지만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국책간행사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 바탕에는 신분과 직업을 초월하는 인본정신과 박애사상, 나아가 위정자가 백성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여민동락의 정신이 강하게 반영돼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특히 장서각에만 있는 〈동의보감〉 한글본은 이 책이 한문 지식인에 국한되지 않고 백성들을 폭넓게 시혜 대상으로 삼았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장서각에서는 세계기록유산의 발굴과 신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실족보류, 종묘기록류, 군영등록류 등이다. 특히 군영등록류는 조선시대의 군사체계와 함께 사회 문화사를 대변하는 귀중본이다. 장서각 도서 가운데 군사관련 자료가 약 150여종 700책 정도이며, 이 가운데 60종 555책이 군영등록이니 꽤 많은 분량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왕실호위와 수도경비를 담당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등 삼군문 자료가 집중돼 있다. 따라서 장서각 군영등록은 조선후기 군사문제의 핵심이 무엇였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오군영 제도는 물론 당시 군인들의 생활모습이나 처우까지 보여주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기록보존 의식은 우리 민족의 자랑
이와 같이 선조들의 치밀하고 책임 있는 기록보존의식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앞으로 고문헌의 보존처리와 현대적 활용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아울러 다른 나라와 차별성을 가진 고품격의 전통문화 콘텐츠는 세계인을 감동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한류 3.0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