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끼어드는 게 아니었다. 흔히 그러하듯 그 주책없는 동정이 문제다. 영국시인 블레이크가 이미, 다른 이들이 더 비참해야만 동정이라는 것이 가능한 거라고 그래서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갈파했건만 그를 전공한다며 그의 시를 자주 들먹이면서도 감히 개들을 불쌍히 여겨 개입을 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처음부터 개들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딸아이가 갈 곳 없다며 슈나우저 한 마리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잠시일 거라 여겼었다. 대소변을 아파트 이곳저곳에 흘리고 가구들을 물어뜯을 때에도 딸아이와 아내가 좋아하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했다. 그런데 그것이 세월이 되었다. 이제는 어머님을 보면 심하게 짖어대어 어머님 모실 때면 꽤 번잡한 격리작전을 펴야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개판이다!
이 한 성질 하는 말썽장이에 비해 시골에서 만난 ‘여우’와 ‘바둑이’는 신사 아니 숙녀들이었다. 이웃집 개들인데 집지을 때부터 자주 놀러왔다. 점잖고 사람을 잘 따라 좀 귀여워했나 보다. 이제는 차 소리만 나도 어디에서 금방 나타나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한 시간 가량의 산책길에도 기꺼이 동행을 해준다.
그런데 얼마 전 ‘여우’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3일 전에는 ‘바둑이’도 수로 관속에서 몸을 풀었다. (관속이라 몇 마리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둘 다 출산으로 애 많이 썼다며 홀쭉해진 배가 안쓰러워 예의 ‘성격 견’ 슈나우저(예는 입맛도 까다롭다.)가 먹지 않아 버려둔 사료를 나눠준 것이 분란의 씨가 되고 말았다. 다른 접시를 챙겨 이들 사이의 싸움은 피할 수 있었는데 지켜보는 ‘여우’의 자식들이 딱하다고 이들에게도 나누어준 것이 걷잡을 수 없는 소동으로 번졌다. 자기 것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운 ‘바둑이’가 삽시간에 ‘여우’의 자식들을 덮친 것이다. 강아지들의 비명으로 얼룩진 아수라장은 몽둥이를 들고 한참 땀을 흘리고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 사이 ‘여우’가 자식들 몫의 먹이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가까스로 소동이 종료되었다. 자식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애미는 제 몫을 챙기는 데 여념이 없다. 개판이다. 조용한 시골집이 졸지에 큰 개 두 마리에 강아지 다섯 마리, 개판이 되었다. 차를 돌리기도 어렵다. 곧 ‘바둑이’ 가족도 찾아올 것이니 더욱 가관이겠지? 그래도 이제부터는 개들 노는 판에 끼어들어 상황을 더 개판으로 만드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해야겠다. 개들에게도 그들 고유의 질서가 있는 것이니!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