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 ‘책 읽지 않는 대한민국’은 이제는 뉴스도 못 된다. ‘학생들의 독서량이 한 달에 3권’인 것도 대입준비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대입을 위한 책 읽기를 강조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이에 본보는 ‘응답하라 책읽기’를 통해 독서의 빈곤화를 해소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단순한 책읽기에서 글쓰기·토론까지 접목되는 통합교육으로 진화한 사례를 통해 전국의 독서교육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 대구만의 독서브랜드 구축
지난해 7월 대구에서는 30권의 학생 저자 책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책쓰기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수천 편의 학생 저자 작품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선정하고 편집·인쇄를 거쳐 30권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배운 수학 이론을 이야기로 풀어낸 ‘수학 이야기로 수다수다’등 30권이 선보였다. 앞서 2010~2011년‘중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 중학생들이 쓴 ‘국어 교과서’도 출간 돼 주목을 모았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대구교육청이 2009년부터 전개한 책쓰기 프로젝트인 ‘학생 저자 10만 양성’덕분이다. 책쓰기 프로젝트는 2005년부터 시작된 아침독서 10분 운동, 나의 삶쓰기 100자 운동 등 독서 정책을 통합·개발한 대구의 브랜드다. 대구에 거주하는 7세 이하 영유아·부모를 대상으로 책 꾸러미를 주고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북 스타트 운동,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Same People)이 같은 책을 읽고(Same Book) 같은 생각(Same Mind)을 나눈다는 의미의 ‘3S운동’ 등이 호응을 얻으면서 책 읽기 운동은 확산됐다.
△ 학생 저자 10만 양성
읽기 중심으로 이뤄진 대구의 독서교육은 2007년 쓰기 중심으로 진화됐다. 글쓰기가 어렵고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하루에 무조건 100자를 써보는 ‘삶쓰기 100자 운동’이 시작되면서 학생별로 연간 20여 편, 초·중학교 9년 간 200여 편이 모아졌다. 당시 대구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장학관으로 근무했던 한원경 경북사대부중 교장은 “글을 정말 쓰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이렇게 지도했으니 2년 만에 문단에 등단하는 아이들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대구교육청은 2009년부터 책읽기와 책쓰기가 통합된 ‘학생 저자 10만 양성’을 추진했다. 이는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자신이 관심을 지닌 분야에 대해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개인별로 30쪽 내외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이다. 책은 시와 소설, 교과목 이해 등으로 다양했다. 또 학생 중심으로 추진되던 책쓰기는 2012년부터 교사들로 확대됐다. 서부고 교사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 등에 관해 고민한 내용을 ‘학교 고쳐쓰기’라는 책에 담았다.
그러나 책쓰기 프로젝트는 순탄치 않았다. 한계에 부딪친 교사들의 글쓰기 지도, 입시 위주 학교 분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책쓰기를 실천한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600여 개의 책쓰기 동아리가 각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 5년 동안 4만5000여 명의 저자들이 탄생됐고, 출판된 책은 80여 권에 이른다.
△ 토론 프로젝트 눈길
대구의 책읽기 교육은 2011년 글쓰기에서 토론으로 다시 진화했다. 토론은 찬반이 확실한 주제를 선택, 시간·순서를 미리 정하는 방식이다. 대구교육청은 2011년 ‘디베이트 중심도시 대구 만들기 프로젝트’(이하 토론 프로젝트) 아래 토론사업을 진척시켰다. “학생들의 성적은 뛰어난데 대입 면접에서 유독 약점을 보인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읽고 쓰고 말하는 통합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해보자”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토론 프로젝트는 600여 개의 토론 동아리가 만들어져 토론이 진행되고 주말엔 지역 학교들이 모여 토론 캠프 등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의미있는 시행착오도 거쳤다. 토론 교육이 토요일에 이뤄지면서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됐고, 사업 추진 속도가 빨라 적응하지 못한 학교 현장의 고충이 컸으며, 일각에선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고민은 승패 결정의 구도가 오히려 경쟁을 부추긴다는 대목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토론이 아닌 이기는 데 집중한다는 것. 이로 인해 디베이트 리그·대회가 아닌 토론 어울마당으로 용어를 바꾸고, 가족·독서·철학·사회과학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더 많은 학생·학부모·교사들과 소통하게 됐다. 이처럼 읽기와 쓰기 중심의 대구 독서교육이 토론 교육을 접목시키고 듣기와 말하기를 추가하면서 한 단계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대구교육청의 설명이다.
● '책읽기 주도' 한원경 경북사대부중 교장 "대구교육청 독서예산 1년 50억 프로그램 내실화로 비로소 성과"
모든 것이 책읽기에서 시작됐다. 한원경 경북사대부중 교장(55)은 학계에서 교육 혁명으로 평가받는 대구의 책읽기·책쓰기·토론을 통합시킨 교육 모델을 만든 주인공이다. 평소 책읽기를 즐겼던 그는 대구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2004년부터 책읽기·책쓰기·토론에 매달렸다.
“책읽기도, 글쓰기도 결국 습관의 힘입니다. 하루 10분 책 읽어서 무슨 독서가 되겠느냐, 100자짜리 글쓰기해서 어떤 실력이 늘겠느냐 하는 회의론도 많았죠. 학교에서 숱하게 해왔던 독후감·논술이 오히려 책읽기와 글쓰기를 저해하는 장애물이었는데 말이죠. 이런 인식부터 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한 교장은 글쓰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글쓰기 훈련을 받은 교사들이 부족하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로 인해 국어 교사뿐만 아니라 전과목 교사들에게 글쓰기 사이버 연수를 받게 했다. 또 학생들의 발달 과정에 맞는 글쓰기를 위한 양식도 만들었다. 초교 1학년이 쓰는 워크시트엔 또래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들을 집어넣는 방식이다. “최근에 초교에서도 통합논술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건 발달단계를 무시한 글쓰기에요. 가령 ‘내가 오늘 동물원에 갔다’고 하면 거기에 가면 무조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자세히 볼 줄 알아야 좋은 글이 나옵니다. 그러자면 발달과정에 맞게 훈련이 뒤따라야죠. 먼저 서사글을 쓰게 하고 설명글을 익히게 한 뒤 감상글, 주장글을 쓰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대구교육청의 책읽기·글쓰기·토론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은 세 가지 조건에 좌우된다고 한 교장은 이야기했다. 교육청의 안정적 예산 지원, 독서·글쓰기를 전담하는 조직, 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 등이다. 특히 과시 행정에 그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내실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의 자발성을 독려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대구교육청의 1년 독서예산은 50억 원이나 된다. 하지만 시설 구축이 아닌 아닌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돌리면서 비로소 성과가 나타나게 됐다”면서 “이 삼박자가 맞아야 책읽기·글쓰기·토론이 통합되는 모델이 안착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