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 내 문화재 조사위원회 19일 개최

▲ 김제 벽골제 학술조사 3차 조사지점.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 내 문화재 시술조사를 위한 조사위원회가 19일 벽골제에서 개최된다.

 

(재)전북문화재연구원(이사장 최완규)은 금번 조사위원회 개최 목적과 관련, “고대농경의 산실인 벽골제의 성격 규명과 복원·정비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농도 김제시의 고대 역사 문화 정체성을 확고히 함은 물론 새만금 방조제, 지평선축제 등과 연계하여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벽골제에 대한 학술조사는 지난 2012년 부터 현재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됐으며, 3차 조사 결과 일제강점기에 제방곡선화가 이뤄지고 마을이 형성되면서 훼손됐던 잔존제방을 확인했다.

 

제방 성토는 크게 2∼5단계의 제방축조 공정을 거친 것으로 확인했으며, 초본류·점토·실트·사질토를 이용한 성토는 기존 2차 조사에서 확인된 중심거 주변의 제방축조방법과 동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Ⅰ지점에서 확인된 제방기저부는 10트렌치(문화재를 발굴·조사하기 위해 땅을 판 흔적)에서 잔존너비 28.4m, 잔존높이 0.9m, 18, 19트렌치에서 잔존너비 36.7m, 잔존높이 1.3m로 파악됐다.

 

그러나, 용수로 개설과 마을의 형성, 후대 경작에 따라 제방의 삭평과 교란이 이뤄진 것을 고려하면 축조 당시의 제방은 이보다 높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Ⅰ지점의 제방 동쪽에 위치 하고 있는 11트렌치의 경우 기존 제방의 안쪽(동족)으로 1·2차 및 3차 조사에서 확인된 층위 양상과는 다르게 성토 전 2단 정도는 초낭을 이용하여 쌓고, 그 위에 성토를 했던 흔적이 확인됐다.

 

초낭(草囊)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초낭을 포함한 일부 구역에서 전혀 다른 성토 방법이 확인 된 것은 제방이 위치 하고 있는 지역의 지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