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지방'은 있는가

▲ 수석논설위원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고 한 이는 독일의 정치사상가인 칼 프리드리히다. 식물의 뿌리처럼 가장 밑부분인 주민을 통해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비유적으로 그렇게 불렀다. 식물의 뿌리는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 준다. 민주주의에서는 주민 한명 한명이 식물의 뿌리 같은 존재다. 주민이 주체로 기능하면서 지역과 삶을 변화시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가 풀뿌리 민주주의이고 지방자치다.

 

주민 관심사안, 지선 이슈 돼야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리더를 뽑는 선택의 기회이자 지역의 고민을 놓고 해결방안을 찾는 정치이벤트다. 따라서 누가 지역을 대표할 적임자인지, 지역은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등등의 토론 공간이 돼야 한다.

 

그런데 6·4지방선거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앙의 거대 담론에 가려 정작 중요한 지역의 문제들이 돌출되지 않고 있다. 최근 무상버스, 복지 등의 문제가 관심을 끌었지만 이 역시 중앙 정치권이 제기한 사안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의 문제들 이를테면 새만금 권역조정, 전북권 신공항 정책, 2주갑을 맞은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 혁신도시 인프라 확충, 관광정책, 인구 증가 및 일자리 대책, 교육문제, 지역특화 프로젝트로 선정된 농생명에서부터 대중교통, 아파트 관리비, 쓰레기 처리 등 소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지역주민 관심사안이 중심이 돼야 한다.

 

지역 현안을 쟁점화하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 비로소 방향성과 해결가능성도 모색될 수 있다. 대안과 개선 과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이고 후보 간 차별성도 띨 것이다. 선거 판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고민을 녹여내며 정책적 대안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된다면 지역발전과 도민이익을 한단계 높이는 훌륭한 정치이벤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문제들에 대한 의제화나 대안, 미래지향적인 비전 등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갈등 사안이거나 자치단체 간 소지역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현안 등은 아예 손 대지 않으려 한다. 유권자 표를 의식한 이른바 포퓰리즘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데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정치리더라면 지역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자기 철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의 지역정책 패러다임은 중앙정부 주도에서 벗어나 상향식으로 바뀌었다. 주민과 자치단체가 자율적 협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경제 문화 관광 등 협력사업 발굴과 자치단체 간 협력, 창의적인 아이디어,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 등이 향후 지역발전을 좌우할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걸맞는 처방도 후보들은 제시해야 마땅하다.

 

선거는 검증이고 선택이다.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어떤 철학과 비전,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현역은 현역 시절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무얼 잘하고 잘못했는지, 정치신인들은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 검증하는 건 유권자로선 당연한 의무다.

 

지역 현안, 대안·해답 모색 필요

 

식물이 자라려면 영양분이 있어야 한다. 봄철 땅을 갈아 엎고 땅심을 키우는 것도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침체되고 낙후된 전북 같은 곳은 포크레인으로 땅을 갈아엎듯 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수술할 것은 수술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는 과감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거의 후광효과이고 후보들이 취할 태도다.

 

그런데 지방선거 판이 너무 잠잠하다. 지역 현안들도 실종돼 있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는 꼴이다. 무엇 때문에 선거를 치르는지 선거의 정체성도 애매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만 뽑으면 되는가.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놓고 대안과 해답을 찾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야말로 지방선거의 요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