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책 읽기] 이제는 토론 교육이다 - (하) 강원도 사례

전국 최초 '토론학교' 운영, 인성교육까지 접목

▲ 강원도 천전초(위)와 장성여중 토론수업 모습.

‘토론’이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집단토론의 경우 일반토론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토론예절을 요구한다. 여기에 배경지식, 사고력, 배려심, 순발력 등까지 두루 익힐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초·중·고교들이 각종 토론대회는 물론 토론동아리, 토론수업 등을 통해 토론 열풍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국 최초로 시도된 ‘토론학교’는 지난 2011년 강원일보가 제안했다. 서울 상일여고 국어교사이자 한국토론아카데미 원장인 류선옥씨가 초빙 돼 토론의 씨앗을 뿌렸다. 2011년 4개 학교에서 시작된 토론학교는 현재 7~8개 학교로 소폭 확대됐다. 토론학교는 9차례의 토론수업을 거쳐 최종보고대회와 초·중·고교생 토론대회로 마무리된다. 숫자 채우기 보다는 내실 더하기로 더디게 확산되고 있지만, 학교의 참여율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토론하며 서로 배운다

 

“교사도 학생들로부터 배웁니다. 발상의 전환은 어린 학생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많아요.”

 

류선옥 원장은 “상당수 수업은 토론형식으로 진행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류 원장은 “교사가 강의하고 학생은 의자에 앉아 듣는 식의 교육을 하지 말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시기의 학생들은 친구 따라 강남간다”면서 “스스로 토론하면서 서로 배우게 하는 시스템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토론식 수업의 강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토론문화에 대한 거부감, 말을 유창하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업무량 증가로 인한 교사들의 불만, 입시에 방해될까 전전긍긍하는 부모 등은 토론수업의 걸림돌이다.

 

그는 “토론이 입시를 좌우하지 않는 경우에도 토론을 바탕으로 한 논술이나 논리적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심층면접을 대비하는 방법으로도 중요성은 크다”면서도 “학생들이 문제해결능력을 키워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에는 무관심한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원탁회의 경청 훈련 효과

 

류 원장은 “학생 간 토론이 말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말을 잘 못하는 다수가 침묵을 지키는 반면 소수가 발언권을 독차지한다는 것. 그는 “토론이 말싸움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말=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모든 다툼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강원 토론학교의 수업은 크게 ‘두마음 토론’과 ‘원탁토론’으로 구성된다. 두마음 토론은 찬성·반대 입장이 관찰자를 설득시키는 토론의 기본 단계이며, 원탁토론은 10명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원탁 테이블에서 토론을 벌이는 방식이다.

 

상황에 따라 2대2, 3대3 찬반토론으로 발언시간이 제한 돼 빠른 논리 전개가 특징인 ‘CEDA(CEDA·Cross Examinat ion Debate Association)토론’도 추가된다. 토론학교 강사들은 “많은 의견을 제시했다거나 상대의 의견을 얼마나 반박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주제의 흐름을 읽고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통해 설득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학교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경청’에 무게를 둔 원탁토론을 자주 활용한다. 원탁토론은 주제를 준 뒤 한 명씩 돌아가며 의견을 제시하고 반론할 기회를 얻는다. 각각의 차례가 돌아오기 전까진 상대의 발언에 반박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상대방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하게 된다.

 

지난해 토론학교에 참여한 이연지 양(장성여중 3)은 “초등학교 때 토론을 하라고 하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근거 없이 내 주장만 하느라 바빴는데, 경청 훈련 이후 말수가 없던 내가 대화가 편안해졌다”고 소감문에 썼다.

 

△논리적으로 감동시켜라

 

류 원장은 “토론반 학생들이 토론을 준비할 땐 세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자료 조사가 전제가 돼야 한다. 인터넷 자료 검색 외에도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직접 찾아보는 등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로 인해 수업에서 다뤄진 주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된다. 남궁식 군(홍천고 2)은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 바람직한가’에 관한 주제로 토론할 때 자료를 찾아 보면서 많은 지식을 알게 됐다”고 했고, 강사는 “토론이 끝난 후에 읽었던 자료가 기억에 남아 엄청난 양의 지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하나의 논제가 주어질 때마다 찬·반 자료를 근거로 양측 모두의 논거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논리적 맹점이 있는지, 상대가 어떤 근거로 압박해 올 것인지 예측하면서 토론의 논거와 체계를 잡아야 해서다. 학생들은 “토론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면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한 자기 소개서 작성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셋째, 상대방의 감성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환경 보호를 위해 선진국이 후진국에 기술을 이전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한 토론을 한다면 ‘배가 침몰하면 1등석·3등석 승객 모두가 위험해지듯 환경이 파괴되면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는 문학적 유추가 효과적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토론은 사고력과 유추 능력, 언어 능력까지 키우도록 한다”고 귀띔했다.

 

● 류선옥 한국토론아카데미 원장 "도입 초기 학부모·교사 반발도 있었지만 말수 적은 학생들 적극적으로 변화 성과"

류선옥 한국토론아카데미 원장(상일여고 교사)은 주말은 거의 지방에서 보낸다. 교사들의 토론연수 요청이 쇄도해서다. 1994년 경희대 전국 고교생 토론대회 대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그는 “30년을 바라보고 토론수업을 시작했다”면서 “이제 20년 문턱에 왔다”고 말했다.

 

“학부모 회의에서 저는 이른바 ‘문제 교사’였습니다. ‘문제집이나 잘 풀어주고 교과서나 분석 잘해서 시험 잘 보면 되지. 그 교사가 누군지 얼굴이나 좀 보자’는 학부모도 있었고, 수행평가를 토론으로 한다고 했더니 상위권 학생의 입시에 불이익이 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부모도 있었어요.”

 

가장 설득하기 어려웠던 대상은 토론세대가 아닌 교사들과 비협조적인 학생들이었다. 그는 “토론수업은 교사들의 업무량이 3배 이상 증가해 불만이 많았다”면서 “더욱이 중간·기말고사는 물론 수능에서 토론수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 보니 설득하는 게 어려웠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 토론교육을 접해보지 못했던 학생들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상대방이 틀리고 내가 옳은 토론방식이 아닌,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걸 강조했다. 그는 “지도교사들이 평가회의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아침에 본 아이가 오후에 달라졌다는 것”이라면서 “평소 말수가 적은 아이가 토론을 하면 적극적으로 변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외국의 토론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오기 보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형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미덕(Virtue)토론’과 같이 겸손·관용·이해·배려·사랑 등 52개 덕목에 관해 협력하는 토론을 하도록 유도해보면 감동과 공감의 토론이 된다”고 덧붙였다. ‘토론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그의 철학은 바로 이런 토론문화의 확산을 통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