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에서 본 찌르레기 부부 새

▲ 황만택
봄이란 계절 앞에 전해오는 꽃소식은 언제나 반갑다. 그러나 이제껏 머물다간 긴 겨울과의 이별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러가는 겨울과 찾아오는 봄.그리고 다시 오는 여름과 가을, 春·夏·秋·冬 어느 한 계절도 거꾸로 오지를 않는다.

 

변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攝理)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느덧 맺힌 꽃봉오리를 보니 봄이 다시 찾아오는 모양이다. 봄이 오면 나는 따스한 봄바람을 안고 가끔 주변의 산을 혼자 오를 때가 많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혼잡함을 피해 조용히 사색(思索)하며 혼자 오르기를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3월 초순 모악산에 올랐다. 만물이 소생하는 듯 추운 겨울 내내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한결 맑아지는 듯 들렸다.

 

나는 남달리 모악산에 대한 애정(愛情)이 많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 모악산 가까이 있었고, 때로는 그 산에 올라 흐르는 계곡 물 속에서 고기도 잡고 가재도 잡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리운 옛 추억이 지금도 아련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악산을 오르는 좁다란 오솔길도 많았지만 지금은 훌쩍 커버린 나무들로 그 좁다란 산길은 모두 다 사라지고 즐비한 음식점들만이 군무(群舞)를 하는 듯 줄지어 있으니 흘러간 세월에 변해버린 환경은 어쩔 수 없는가 싶다. 그러기에 나는 모악산을 오를 때면 그 때에 내가 알고 있었던 옛길이 항상 생각이 난다.

 

이런저런 생각을 더듬으며 따스한 봄볕이 비치는 대원사 절 집 앞을 지나다가 찌르레기 새 두 마리가 빨간 맹감나무 열매를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용한 산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나는 혼자서 무슨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무척 반가웠다.

 

그 새는 마치 바람결에 타고 온 신선하고 해맑은 미소처럼 보였다. 행운이랄까? 한 손만 쭉 뻗어도 금방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정신없이 맹감나무 열매를 쪼아먹는 것을 보니 지난 겨울 내내 굶주렸던 모양이다. 맵시 있는 잿빛 날개의 색깔도 거칠어 보였고, 윤기가 없어 보였으며, 몸통의 날렵한 모습도 조금은 메말라 보였다.

 

그래도 그 새들의 모습이 어찌나 청순하고 사랑스럽게 보이던지 나는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한참을 눈여겨보았다. 사랑을 속삭이는 듯 정답게 조잘거리는 모습이 마치 한 쌍의 부부 새처럼 다정스럽게 보였다.

 

얼마간 정신없이 열매를 쪼아 먹던 새들은 배가 불렀던 모양인지 빨간 열매가 많이 남았는데도 어디론지 훌쩍 날아가 버린다. 미련 없이 떠나버린 새들의 뒷모습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산새도 들새도

 

풀씨가 고소하다고 주머니에 넣지 않고

 

토끼도 다람쥐도

 

도토리 맛있다고 바구니에 담지 않아 (이화주의 동시‘산새도 들새도’)

 

날아가 버린 새들의 뒷모습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나는 그 부부 새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도록 빌었다. 우리 인간 세상도 저 날아간 새들처럼 정답게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한 세상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기와 질투가 없고 미움과 증오가 없는 새들처럼 언제나 배부르면 욕심 없이 돌아설 줄 아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새들은 나에게 행복한 모습이 진정 어떤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듯하였고, 배부르면 욕심 없이 돌아설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이제 봄이 더 무르익으면 또 더 많은 새들을 보겠지만, 나는 그 정다운 부부 찌르레기 새를 보면서 일상에서 찌든 마음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싱그럽고 청순해지는 마음으로 가득 차 하루 내내 무척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새들의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수필가 황만택씨는 2008년 〈수필시대〉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