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지방자치제가 1991년 부활되면서 그 덕에 인생역전을 가져온 사람들이 생겼다. 음지가 양지로 바뀌는 변곡점이 마련됐다. 30년간 지자제가 중단될 때는 관에 협조적인 사람들로 관변단체가 조직 운영됨으로 해서 그 반대에 서있던 사람들이 기를 펴지 못했다. 지역유지들은 주로 관을 끼고 돈 벌었고 관을 배경 삼아 좌지우지 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공직자들에게 이권이 생길 때마다 떡값을 건넨 다음 관과 결탁해서 이득을 챙겼다. 한마디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관 주변서 주류인양 호가호위하며 떵떵거리며 살았다.

 

관선시대에 유지랍시고 행세해온 사람들이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된 이후에는 추락을 거듭했다. 민선시대는 야당을 해왔거나 바른말 잘한 사람들로 선수교체가 이뤄졌다. 갑을이 뒤바꿔졌다. 관선시대에 이름도 없던 무명들이 민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대거 전면에 등장, 새로운 유지층을 형성했다. 이 과정서 기득권 세력과 적잖은 마찰과 충돌이 빚어졌다. 학식과 재력이 없는 사람들이 대거 지방의원으로 당선돼 시군정을 주물렀기 때문이다. 집행부도 자신들이 그간 누려온 권한 등이 의원들한테 침범당해도 제도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민선 단체장을 5번 선출했다. 지자제 때문에 출세 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관선시대 같으면 감히 꿈도 못 꾸었던 사람들이 민선시대에 시장 군수가 되기도 했다. 행정고시나 합격해야 단체장을 할 수 있었지만 민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방의원도 똑같다. 자신의 학·경력과 재력으로는 넘나 볼 수 없는 지방의원 자리를 꿰찼다. DJ가 대통령 되려고 지방자치제를 부활시키면서 인생역전이 시작됐다. 물론 잘 한 사람도 있었지만 불명예 퇴진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 현역들은 지방의원 맛에 길들여져 뻔뻔스럽게 선거판을 누빈다. 지역에서 지방의원 정도의 명예나 권한을 누릴 자리가 거의 없다. 도의원은 5000만원 이상의 의정비가 지급되고 때로는 능력 이상의 과분한 대우를 받는다. 지방의원들은 집행부에 감놔라 배놔라 할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고 집행부와 짝짜꿍해서 인사도 관여한다. 상당수가 집행부 장학생으로 전락해 견제와 감시는 뒷전이다. 심지어 어떤 도의원은 자신 아들 명의로 된 예식장의 비리가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 돼 물의를 빚었는데 지금와서는 돌직구 도의원이라고 자신을 홍보하고 있다.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이 지방의원을 하고 있고 또 하겠다는 모습이 가관이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