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의 선물

1446년 10월 9일 귀하디 귀한 책 한권이 세상에 나왔다. 한글 창제 목적과 원리, 문자 사용에 대한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 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한자가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문자체계여서 많은 백성들이 배워 사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던 세종은 1443년, 우리말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고 그 이름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의 ‘훈민정음’이라고 붙였다. 이 책은 그로부터 3년 뒤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자모 글자의 내용,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을 묶어 만든 것이다. 책 이름 또한 글자 이름과 똑같이 <훈민정음> 이라 하였는데 해례가 붙어 있다하여 ‘훈민정음 해례본’ 혹은 ‘훈민정음 원본’이라고 한다.

 

세계언어학회가 ‘한글’을 문자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진화된 문자로 평가하고 있는 바탕에는 한글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상세히 풀어놓은, 세계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문자해설서인 이 책이 있다. 유려한 글씨로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된데다 종이와 사용된 먹도 우수해 15세기 출판문화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특징이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 을 오늘에 전해준 사람이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온 재산을 쏟아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이 아니었다면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 나섰던 일제의 치하에서 이 책은 어떤 운명에 처했을지 알 수 없다. 간송은 자신이 수집한 많은 문화재 중에서도 <훈민정음> 을 가장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최근에 펴낸 <간송문화> 에 이 책을 소장하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간송은 우연히 책거간을 하는 사람이 경상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해오기 위해 돈을 마련하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송이 그를 불러 그 돈의 액수를 물으니 당시 큰 기와집 한 채 값인 1천원이라 했다. 간송은 아무소리 않고 그에게 돈 1만1000원을 내주며 ‘1000원은 수고비요’ 했다고 한다.

 

지난달 말 개관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문화’전이 열리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만 공개했던 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의 첫 나들이다. 이 전시회에서 간송 선생이 우리에게 남겨준 귀한 선물,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족적이 참으로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