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공천개혁이라도

지선 여야 결국은 정당공천 / 국민 냉소 불식시키려면 제대로 된 인물로 승부해야

   
▲ 유길종 변호사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기 위해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 기초선거 정당공천에 온통 폐해만 있는 것은 아니고 나름 장점도 있다. 정당공천을 통하여 난립한 시장·군수나 시·군의원 후보 중 터무니없는 후보가 걸러지고, 참신하고 능력 있는 정치신인이 발굴될 수 있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후보들의 지명도가 떨어지는 기초의원선거의 경우에는 유권자들이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때 정당공천은 유권자의 고민과 혼란을 덜어 주기도 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그동안의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장점은 살리지 못한 채 온갖 폐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기초선거 공천을 좌우하면서 줄서기와 자기 수족 심기가 만연했고, 참신한 정치신인 발굴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상향식 공천을 한다며 이런 저런 모양갖추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모양갖추기였다. 기초선거 공천을 포함한 모든 공천에서 돈공천, 줄세우기공천 등이 반복되어 왔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된다는 말은 점잖은 표현이고, 공천과정에서 드러난 온갖 부패로 정당공천이 정치불신의 근원이 돼왔다. 특정 정당이 독식을 하는 영남과 호남에서는 이런 폐해가 더 크게 나타났다. 그래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도 모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위 대선공약을 뒤집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명분의 제시도 없었고, 공약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의 최대 명분으로 기초선거 무공천을 내걸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거세게 비난해 왔다. 안철수 의원은 박 대통령의 입장을 듣겠다며 청와대를 사전 조율 없이 방문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더니 지난 4월 10일 당원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이유로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의 여러 폐해를 거론하며 공천 폐지를 앞다투어 약속하더니 막상 선거가 닥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약속을 뒤집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안철수 의원은 자신에 대한 온갖 비아냥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책임의 정도를 따진다면 먼저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훨씬 무겁다. 수회에 걸쳐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약속을 뒤집은 것도 한심하지만, 먼저 대선공약을 폐기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론 번복을 비난하는 것은 후안무치하고 꼴불견이다.

 

한심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정당공천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문제는 정당공천의 폐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정당공천 폐지 공약의 이유가 되었던 공천 비리, 줄세우기 등의 폐해를 막을 제도적 보완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만, 우선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해야 한다. 과거 비리전력이 있는 자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선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불법선거운동에 혈안인 자, 그저 자신의 영달과 이권을 위해서 정치를 하려는 자, 아무런 식견도 없이 때만 되면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자, 자신이 속한 직역에서조차 존경은 커녕 조롱의 대상이 되는 자도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공천과정에서 이런 자들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는 위험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여야는 약속을 뒤집으면서 자초한 국민들의 불신과 조롱을 제대로 된 공천으로 불식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