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도내 신당 진영의 기초선거 후보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바뀔 것 같지 않던 무공천 방침을 믿고 기호 2번이 없는 6·4지방선거를 준비해왔다. 이들 후보들은 무소속 선거전을 준비하는 고통 속에서도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상황을 큰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신당의 무공천 철회로 후보들은 다시 ‘공천=당선’의 구도로 내몰리게 됐다. 후보들이 또 지역구 국회의원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이다. 공천 칼자루를 쥔 국회의원 앞에 목을 내놓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무공천 방침 번복 이후 ‘국회의원들이 잠시 닫았던 공천 가게를 다시 열었다’는 조롱이 그래서 나온다.
되짚어보면 기초 무공천이 대선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 된 배경에는 중앙 정치권이 기초선거를 쥐락펴락 하면서 참다운 지방자치가 정착되지 않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지역 국회의원들의 몸종으로 전락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 대한 지방정치인들의 줄서기와 공천 헌금 등의 충성 관행도 정상적인 풀뿌리자치를 위해 꼭 없애야 할 과제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있었다.
실제로 지방자치 20년간 공천비리로 법의 심판을 받은 이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대선이 끝나면 여야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법제화 해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화라는 질긴 사슬을 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공약 뒤집기에 이은 통합신당의 무공천 철회로 그 같은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물론 여야가 대등하게 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긍정 평가도 있지만 특정당 독식의 호남과 영남에서 국회의원의 공천 횡포를 막을 방법 또한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사실 통합신당 출범 전까지 도내 국회의원들은 기초선거 공천을 예상해 6·4지방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도내 대부분 지역에서 국회의원의 특정인 낙점설이 파다했고 관련 정황도 드러났다. 그러던 중 기초 무공천을 내걸고 통합신당이 출현하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신당이 뜨자 민주당에서 “공천 장사를 망쳤다”는 푸념이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국회의원들의 공천권 집착은 신당의 무공천 여론조사 당일에도 확인된다. 이날 이춘석 도당위원장 및 극소수를 제외한 전북 국회의원들은 당원들에게 공천 찬성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신당 출범의 핵심 고리가 기초 무공천인데도 국민과의 약속 실천 보다 기득권이라는 잿밥을 더 탐낸 결과다. 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초단체장 후보자격심사를 중앙당이 총괄하게 됐으니 또 어떤 꾀를 부릴지 자못 궁금하다. 벌써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초단체장 후보들에게 경선방식을 강요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는 기초단체 공천의 폐해는 어떤가. 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기초단체장과 의원을 줄 세운 중앙정치의 전횡은 풀뿌리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 기초 단체장과 의원이 서야 할 줄은 공천권자가 아니라 지역주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분들이 선거에 동원되고 지역구 의원에게 줄을 서야 다음 공천을 기대할 수 있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지방자치는 요원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철회 대국민 회견에서 나온 이 같은 언급을 과연 도내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
멈추는 듯 했던 공천비리 시한폭탄이 다시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