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서해훼리호 선장은 끝까지 사투…"

세월호 '승무원 먼저 탈출' 공분

“침몰하는 배 안에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서해훼리호 백운두 선장의 숭고한 죽음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진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선장 등 일부 승무원들이 승객의 안위를 먼저 챙기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살겠다고 배를 이탈한 것에 대해 공분하고 있다.

 

앞서 2003년 19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당시에도 화재상황을 알고도 전동차키를 뽑고 도주, 승객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게 한 기관사의 이기적인 행동이 도마에 올랐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이 두 사고 모두 승객의 안전은 뒤로 한 채 먼저 사고 현장을 벗어난 승무원들이 있었다.

 

이에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끝까지 침몰하는 배 안에 남아 승객들과 함께 했던 백운두 선장(당시 56세)의 의로운 죽음이 재조명되고 있다.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20분께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 격포항으로 가던 중 침몰, 362명의 승객 중 292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해상 참사다.

 

당시 백 선장은 침몰한 배 안의 통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통신실로 뛰어들었다가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온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훼리호 참사 생존자인 정광우씨(77·전주시 진북동)는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목숨을 내걸고 승객들을 살리고자 했던 백 선장의 의로운 죽음이 다시 한번 생각난다”고 말했다.

 

당시 생존자 및 부안 위도 주민들은 지금도 백 선장을 높이 기리고 있다.

 

시민 김모씨(50·전주시 효자동)는 “영국 버큰헤이드호 참사 때도 여성 등 노약자를 먼저 구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승무원들이 있었다”며 “앞으로 혹시 모를 대형참사 때는 책임있는 이들의 ‘살신성인’이 보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로 가던 도중 암초에 부딪혀 침몰했다. 당시 선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은 구명보트가 부족한 것을 보고 “여자와 어린이부터 태워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에 여자와 아이 등 노약자 180여명이 구조됐지만, 선장 등 436명의 군인은 배와 함께 운명을 맞았다.

 

이후‘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