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

거대한 비극을 몰고 온 실체는 따로 있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인지 잘잘못을 가리는 일조차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정황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하는 절박함과 안타까운 ‘순간’들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은 분노하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9일째. 국민들이 간절하게 기도했던 실종자 생존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기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지금, 우리를 더 죄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들 다 탈출하고 나가겠다”며 아이들 먼저 탈출시키다 정작 본인은 탈출하지 못한 스물두 살 승무원 박지영씨,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 선실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함께 희생된 단원고 남윤철 교사, 아내에게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간다’는 마지막 전화를 한 뒤 실종된 세월호 양대홍 사무장, 탈출할 수 있었지만 제자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배에 남아 제자들을 구출하려다 희생된 새내기 교사 최혜정씨,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들은 나오지 못한 예비신랑신부 정현서 김기웅씨.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눈부신 영웅’, 그들이다. 특히 절박했던 마지막 순간이 학생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남윤철 교사의 희생은 눈물겹다. 올해 서른여섯 살, 교사가 된 지 7년째인 남교사는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제자들의 탈출을 도왔다.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 입히고, 객실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 사이 물이 들어차 누구라도 탈출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남교사는 미처 밖으로 나가지 못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객실 쪽으로 돌아섰다. 제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남교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방송에서 남윤철 교사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생애를 다시 만났다. 똑똑하고 의로웠던 제자를 추억하며 끝내 눈물을 흘린 스승이 말했다. “윤철이는 스승보다 훨씬 나은 제자였어요. 청출어람의 본보기였죠.” 가슴 먹먹해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남교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안부를 묻는 인척에게 건넨 답이다. “걔가 먼저 나오겠니? 애들 다 내보내고……. 걔 못 나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는 아직도 수많은 실종자들을 안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의무가 분명해졌다. 방기했던 의무를 찾게 한 희생이 돌아볼수록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