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숲을 바라보며

▲ 김경희
4월의 숲은 완성을 향해 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습니다.

 

젖살 오른 아기 살결 같은 나무의 어린잎들은 유록(幼綠)의 피부로 숲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나무들은 자기 본디의 모습과 체질에 맞게 잎 피우고 색 드러내면서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나무들과 풀을 통 털어 ‘숲’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숲은 개성 있는 나무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형성해 갑니다.

 

끼리끼리 또는 서로 다른 이유를 인정하면서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머리·허리·팔·다리와 같은 역할을 분담하면서 한 해 한 계절을 살아냅니다.

 

그리하여 숲의 영혼 또한 우리의 심장 같이 보이지 않는 뿌리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뿌리가 부실한 나무는 썩습니다.

 

가는 뿌리가 적은 나무는 건강한 숲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굵은 뿌리도 중요하지만 잔뿌리의 역할도 매우 소중합니다.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자리에 있는 사람만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과 양심적인 서민들이 건재한 뒤 감투 족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생각을 그리하다보니 바라보는 숲도 큰 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항꾸네(함께) 제 자리에서 제 빛을 소리 없이 드러내며 ‘완성의 숲’을 향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 내리는 4월 중순 밤이었습니다. 여암선생과 정종대포 집에서 백화수복을 마셨습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격 있게 대화를 풀어나갔습니다.

 

그 때, 여암선생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에 알 듯 한 사람이 비쳤습니다.

 

눈동자 고정시켜 보니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얼굴 양분하여 아랫부분 코와 입가주름은 포탄 맞은 땅거죽처럼 패이고 굴곡져 있었습니다.

 

짜증이 묻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거울 속 현실의 나와 마음 속 과거의 내가 융화를 못한 것이지요.

 

얼굴에 불만을 느끼며 나는 ‘이 얼굴 되기까지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 하는 생각이 무섭게 가슴에 얹혔습니다.

 

그 순간 ‘술 안 들고 무슨 생각하느냐’는 여암선생의 걸걸한 음성에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내 등 뒤 TV에서는 진도 앞 바다 〈세월호〉 침몰사건 소식만 되풀이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희생당한 어린 영혼들에게 나이 든 자로서 미안하고 무참한 마음이었습니다.

 

밤 시간은 깊어가고 희생당한 유족들 심장은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구조 활동은 거의 없이 정부의 대책회의는 이틀이 지나고,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거짓 방송은 유족들을 분개하게 했습니다.

 

국가도 정부도 군도 경찰도 검찰도 힘을 못 쓰고 있었습니다. 조국의 한계 같은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방에서 꼼짝하지 말라”는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학생들은 모두 물 속 저승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러나 그 말을 믿지 않고 밖으로 나온 사람과 선장께서는 살아남아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침몰한 〈세월호〉가 남긴 ‘4월의 진실’입니다.

 

세상은 그렇듯 단장의 아픔인데 숲은 4월의 하늘 아래에서 양떼의 털 같이 부클부클 연한 녹색 옷을 입고 짙어만 갑니다.

 

그 숲 앞에서 나는 생명의 의미와 완성되어가는 숲을 맨눈으로 실감하고 있었습니다.

 

4월의 숲을 바라보며 스스로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 곳의 찜찜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세상 속에서 끓고 있는 ‘4월의 아픔’때문이 아닐까요.

 

△ 수필가 김경희씨는 198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