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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 몇몇이 모여 대통령을 뽑던 시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보되고 지식인들마저 자기 전공이 아니라고 외면하며 숨죽이던 때, 목숨을 건 제자들의 투쟁에 뒤늦게 눈을 뜬 소수 교수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서명을 하고 나섰다. 삼엄한 시절이라 그만큼 단호할 수밖에 없었다. 잡혀가 구타당할 것은 물론 여차하면 교수직을 잃을 수도 있다는 염려도 떨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학문연구에 대한 반성도 뒤따르게 된다. 전공에 갇혀 좁고 긴 관을 통해 하늘을 살피는[용관규천(用管窺天)]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문학의 이름으로 문학을 낯설게 하고 언어학의 이름으로 언어를 소외시키는, 현실은 괄호 속에 묶어둔 채 ‘상아탑주의’에 함몰되어 유유자적 아니면 전전긍긍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뒤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점점 더 심해지는 지방소외, 지역차별 문제에 전공을 핑계로 모르쇠 해온 것에 대한 반성을 절실히 하게 된다.
이름하여‘비판적 아카데미즘’. 학제간 연구를 통해 지역문제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영호남 4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범한 지역학술운동단체가 내건 실천적 학문활동의 기치다. 한때 우리사회에 풍미했던 지방분권이나 지역혁신은 이 단체들에서 제안하여 대선공약을 거쳐 국가 핵심정책으로 승화시킨 개념이다.
대학이 평가를 내세운 무한경쟁체제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연합하여 학회(한국지역사회학회)를 결성하고 학회지 〈지역연구〉를 매년 4차례 발간하며 봄·가을 두 번의 학회를 치르는 등 활동을 정례화하고 있다. 평가를 전공영역으로만 한정하는 등 역풍이 거세지만 이를 역으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상황으로 간주, 힘을 모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역이나 대학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지난 주말 대구경북, 부산경남, 광주전남 등 영호남 학자 80여명이 참여해 ‘도시와 농촌, 순환적 발전’을 대주제로 학회를 치렀지만 언론은 물론 교수들도 전혀 눈여겨보지 않는다. 우리시대 가장 중요한 화두인 ‘지속가능성’ 문제를 다방면에서 검토 26편의 논문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성장론에 갇혀 낙후 타령만 하는 우리 지역의 여건이나 연봉제를 향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학의 엄혹한 현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현상. 교수직까지 내걸 수 있었던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나?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