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의 나라, 이순신의 나라

세월호 참사 무능한 정부 / 국민을 지켜주는 나라에 살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 신명국 원광학원 이사장
오늘 4월 28일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순국일이자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일이다. 아울러 소태산 박중빈이 창립한 원불교 대각개교절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살았던 시기와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와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점일 것이다.

 

전봉준이 살았던 나라는 관료들의 부패와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한계에 이르러 농민봉기가 빈번했던 나라였다. 전봉준은 이에 항거하여 일어섰으나 그의 국가는 백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농민들을 압살하려 들었다. 전봉준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는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순신의 나라는 전쟁이 일어나자 늘 나라의 주인이라고 외쳤던 왕실은 도망 가버리고, 전쟁 중에도 갖은 모략과 중상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갔다. 그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의 신념으로 진도 앞바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원불교 박중빈은 식민지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각오로 인간의 정신개벽을 통한 상생과 조화의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헌신하였다.

 

진도에서 해난사고가 난지 13일이 되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현실에서, 줄곧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은 200명이 넘는 무고한 어린 학생들과 승객의 생명을 앗아간 원인을 선장과 해운회사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는 그토록 무능했던 정부는 온 나라의 슬픔과 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로 옮겨가는 여론의 통제에는 신속함과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스포츠 중계하듯 언론들은 사고의 원인 규명과 정부의 대응 미숙 보다는 사고를 낸 해운사의 추궁에 몰두하고 있다.

 

실로 짧은 시간에 물질적 성장을 이룩한 우리 사회가 OECD 국가의 반열에 들었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우리사회가 소중하게 키웠어야할 정신적 가치나 도덕적 규범을 소홀히 하고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온 나라 국민들은 애통함을 억누르며 과연 정부가 재난 대응에 충실했는지를 묻고 있다. 오죽하면 이번 사고 유족이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했겠는가.

 

이번 사고를 보면서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지금 국민적 희망을 염원하는 노란리본도 오천석의 논픽션 모음집 『노란손수건』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한다. 그 책에 버큰헤이드호의 침몰 이야기가 실려 있다. 630명의 군인과 그 가족을 태운 이 배가 아프리카 남단에서 좌초하여 침몰할 때, 선장과 선원들은 구명보트에 승선 가능한 150여명의 어린이와 여성을 태우게 하고 나머지 선원과 군인들은 군가를 부르며 배와 함께 수장된 이야기다. 버큰헤이드호의 침몰은 19세기 중엽의 일이었지만 이후 모든 국가에서 이 사건을 해난사고 시 선원의 행동 규범으로 삼고 있다. 특히 영국인들은 해난사고 시 누구나 ‘버큰해이드호를 기억하자’ 속삭인다고 한다.

 

엄청난 해난사고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봉준이 희망한 나라, 이순신이 지킨 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그런 국가에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