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은 사촌보다 좋은 것

▲ 양복규 명예교육학박사
중국 남북조시대의 역사서인 ‘남사(南史)’를 보면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료가 정년을 앞두고 노후에 살 집을 찾았던 이야기가 기재돼 있다. 송계아는 오랫동안 찾다가 여승진(呂僧珍)의 옆집을 매입했는데 댓가로 1100만 냥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여승진이 송계아에게 “100만 냥만 주어도 충분한 집을 왜 1100만 냥이나 주고 매입했느냐?”고 하자 송계아가 대답하기를 “집값으로 100만 냥 그리고 당신(여승진)을 이웃하기 위한 프레미엄으로 1000만 냥을 준 것이다”고 했다. 그처럼 이웃이 소중하기에 이웃을 사촌이라 한 것이다. 사촌은 형제간 다음으로 가까운 일가를 말한다.

 

충북 괴산에 노령의 학자 한분이 허름한 집에서 시문(詩文)으로 세월을 보내며 살고 있는데, 그의 집 동쪽에는 철공장이 이사 왔고, 서쪽에는 목공소가 이사를 와서 영업을 하는데, 금강석 톱으로 쇠를 자르거나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목공소에서 함께 울리는 소음에 고막이 찢어지고 혼비백산할 것 같은 나날의 연속일 뿐 아니라 주야로 24시간을 계속하고 있지만 솜으로 귀를 틀어 막고 말 한마디 않고 견뎠는데 어느날 철공소 사장이 찾아와서 “그동안 소음으로 누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하자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서운하다면소 손궤 속에 있는 곶감을 꺼내 주었다. 다음 날에는 목공소 사장이 찾아와서 어제 철공소 사장과 똑같은 인사를 하기에 학자 역시 씨암탉 한 마리 있는 것을 잡아서 후대를 했는데 3일 후에 보니 철공소와 목공소를 맞바꾸어 운영하자 소음은 같았고 그들에게 조롱마져 당했지만 평생 동안 말 한마디 않았다고 한다.

 

동양인은 천품이 정적(靜的)이기에 멀리 활동하지 않고 상부상조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웃과 처마를 맞대고 살면서 황소 한 마리정도의 이해는 따지지 않으며. 서양인은 동적(動的)이기에 가급적 이웃과 친교하지 않기 위해 독립된 가옥을 선호하기에 아파트의 층간도 두텁게 만들어 소음의 피해가 없도록 할 뿐 아니라 ‘개가 닭보듯’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심청이가 밤마다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리에 이웃집 아낙네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와서 젖을 먹여 길렀지 않았던가? 요즘 같으면 “시끄럽다”고 젖은 고사하고 화 내지나 않았을지! 어린이 유괴, 성폭행, 자동차 주차문제 등이 이웃과 지인들 사이에서 빈발하자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엘리베이터나 길목에서 어른들을 보면 인사도 하지말고 돌아서라”고 가르친다. 흉악범죄를 예방하고, 어른들에게서 공기나 침을 통해 전염병에 감염될까 봐서라고 한즉 일리가 있지만 어린이의 교육은 거꾸로 된 것이다.

 

이웃을 고를 때에 ‘권세가 높고 부자집 옆에는 피하라’고 했다. 이와 같은 이웃에서는 자녀들의 교육도, 자기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순박한 사람일지라도 허영심과 자만심이 팽배해지기 때문이다. 수년전에 J모 전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연희동 골목 이웃집들의 고난이 얼마나 심했던가?

 

며칠 전에 국무회의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을 최대로 낮에는 57dB, 밤 52dB로 결정공고했다. 이로 인한 사건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이웃은 멀리 사는 사촌보다 좋은 것’이라는 고사가 무색할 정도의 세태이다. 잠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정서에 맞도록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