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항상 등장인물과 최대한 같은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 혹은 성격이나 버릇 등 겹치는 부분이 가장 많은 사람을 배우로 섭외한다. 꼭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평소라면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할 스태프들을 무대에 세운 적도 적지 않다.
이렇게 직업과 지위를 막론하고 나의 프레임 안에 담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은 영화의 캐릭터처럼 참 개성있고 한결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에 대해 물으면 ‘아, 그 친구는 이런 친구야’라는 대답이 서스럼없이 나온다. 게다가 어딜 가서 물어봐도 그 대답에 있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두 하나의 색깔을 떠올리는 것이 신기하다.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임에도 모두가 그들 각각에 대해 변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확고한 캐릭터가, 확고한 색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진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빛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하고, 자신의 장단점에 솔직하며 자기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가끔은 영화의 등장인물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때마다 그들에게서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뿌리 비슷한 것을 느낀다. 신념과 자존감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그 사람만의 독특한 색채와 향기를 만들어 낸다.
그에 반해 무채색의 사람은 항상 어딘가 붕 떠 보인다. 분명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를 정의할 어떤 알맹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2008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트로픽 썬더’에서는 이른바 ‘연기병’에 걸린 한 배우가 등장한다. 소문난 명배우지만 한 번 연기에 빠지면 일상 생활에서까지 그 배역이 되어 산다. 흑인을 연기하면 다음 배역을 맡기 전까지는 피부를 까맣게 태우고 흑인 말투를 쓰는 등 자신의 배역에 기생하며 사는 식이다. 끝내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어느 곳에든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만의 색을 가진 사람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꽤 요란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다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색으로 현란하게 꽉 채워진 배경 앞에 특정한 색이 꾸준히 덧칠되어 주인공이 되어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색이 짙은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바로는, 여러 색을 겪어본 후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색채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색깔이 되어본 후 비로소 찾은 하나의 색을 끊임없이 덧칠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달려가고 있는 20대의 세상은 먼저 수많은 색으로 배경을 채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캔버스를 요란하게 꾸미고 있을 나의 주변인들이 그 와중에 조금씩 도드라지는 색을 보며 기뻐했으면 좋겠다. 이 색이 꾸준히 짙어질지, 새로운 색이 덧씌어질지 고민하며 흔들리는 나날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