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군자가 될 수 없다?

 

봄이 가고 있는데도 꽃구경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바다물속에서 차갑게 죽어간 젊은 넋들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부모 형제들의 가슴에 차오르는 피고름 생각하면 차마 화사한 꽃에 눈길 줄 수가 없다. 그렇게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잔인한 사월을 넘어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도 견디고 있다.

 

그런데도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책임회피에 연연하고 있다. 그럴듯한 희생양 골라 국면을 전환시키려고만 할 뿐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조차 피해가고 있다. 남 탓만 해대는 소인배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이 계절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격마저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君子求諸己)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小人求諸人)” 했다. 제대로 된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남을 탓하기보다 자기 잘못을 먼저 점검한다. 소인배들은 항상 남 혹은 다른 것에서 그 잘못의 원인을 찾아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국가재난 시 구조의 궁극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번 재난의 경우에는 발생 원인의 상당 부분도 이름만 안전행정부로 바꾸었을 뿐 국민 안전을 위한 응분의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아니 오히려 각종 규제를 풀어 불안전을 조장한, 현 정부에 있다. 그런데도 전 정부와 청해진, 구원파 등 남 탓만 해대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은 일에 대한 평가기준도 자기에게서 구한다.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다. 남들의 입방아에 놀아나지 않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를 묻는다. 이번처럼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언론을 동원하거나 이를 위한 연출을 하지는 않는다. 사과도 마찬가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언론이나 여론을 의식한, 말뿐인 사과는 군자라면 응당 부끄럽게 여겨 피한다. 자기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그 잘못에 대한 구체적 진단과 처방이 전제되어야 한다. 막연히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읽기)은 면피용 변명이기 십상이다. 역시 군자답지 못한 굴신(屈身)이다. 그러니 위로는커녕 화만 북돋울 수밖에.

 

흔히 군자는 제대로 된 사람을 가리키지만 치자(治者)를 뜻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사람만이 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 계절을 흐느끼며, 혹 ‘여자는 군자가 될 수 없다!’ 미리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참으로 수상하고 참담한 계절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