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배경에는 숫자가 갖는 매력이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객관적 사실처럼 근사하게 포장하는 역할을 한다. 엄밀한 과학이라는 인상마저 풍긴다. 또 여론조사 시장의 참여자들, 이를테면 여론조사 업체와 언론, 국민 사이의 이해 일치도 한 몫 거든다. 영리추구와 보도, 정치정보 등의 수요가 여론조사를 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여론조사에는 오류라는 지뢰밭이 쫙 깔려있다.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표본(sample)조사다. 모집단(population)을 대표하는 표본추출이 제대로 됐는지, 응답률은 몇 %에 이르는지에 따라 신뢰성에 큰 차이가 난다. 전화조사가 20% 정도의 응답률을 보이는 반면 ARS(automatic response system)의 응답률은 10% 밖에 안된다는게 정설이다. 전화기를 든 사람의 90% 정도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셈이다. 1000명을 조사할 경우 1만 가구와 통화를 해야 하고 이런 조사를 다섯차례 하면 5만 가구와 통화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구 10만명도 채 안되는 시군지역에서 샘플링이 제대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질문내용과 질문순서, 조사시점, 조사주체 등 비표본 추출의 오류도 상당하다.
여론조사는 6·4지방선거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시장 군수 공천과 시군의회 의원 공천이 여론조사로 진행됐고 도의원 역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여론조사 결과로 공천자를 결정지었다. 심지어는 표본오차 안에서도 1·2위를 가르고 있다. 시장, 군수, 도의원, 시군의원의 명줄이 여론조사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건 문제다.
여론조사는 앞으로도 정치인과 정치집단, 정책 등에 호가를 매기면서 권력 중개인 역할을 왕성하게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함정이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는 ‘만능 키’가 아니다. 그런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여론조사가 판치고 있다. 우리 정치가 자꾸만 ‘여론조사 정치’로 흐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