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선출된 뒤도 문제다. 그들의 모습이 표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제의 그가 아닌 것을 본인만 모를 것이다. 전문 분야에서 수십 년을 일해 온 공무원들을 ‘일꾼’ 부리듯 막 대한다. 인사비리, 이권개입, 성희롱 등 범죄와 추태도 각양각색이다. 화려했던 수많은 공약들은 휴지 조각이 된다. 선거철에 보여준 겸손하고 해맑던 미소 뒤에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이 감춰져 있었다.
우리 국민들의 성정(性情)을 흔히 냄비에 비교한다. 공정한 선거를 하겠다면서도 정작 기표소에 들어가선 인연을 앞세운다.
요즘 새정치연합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한다고 선언해 놓고 슬그머니 공천에 나선 것은 우리 현실정치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새정치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어쨌든 지역 발전을 위해 뛸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 감정은 최대한 배제돼야 한다. 그러나 전북은 냉철한 이성보다는 상황에 따라 늘고 주는 감정의 잣대가 당선을 좌지우지 한다. 이성보다는 각자의 입장과 감정에 따르는 경우가 빈번한 사회가 되다보니 마치 주방 싱크대 밑에 바퀴벌레를 둔 채 화장실에서 비눗물로 손을 씻으며 웃는 것과 같다.
내 생각만 옳고 상대방의 그름만을 탓하는 빗나간 사고는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더한다. 이 시대 최대의 화두인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일반 시민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지역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 이권을 넘보지 않고 오직 빚을 준(?)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줄 후보가 중요하다. 인간의 가치를 논할 때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의리, 지조, 명예, 권력, 애정, 금력, 청렴도, 지식 등에서 우선되는 항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또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집트의 종교학자인 ‘자키 바다위’는 “근본주의자들은 상대의 의견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하나의 소리만 원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에 느낌이 꽂혔을 때 옆과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국민들의 선출로 집권한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저지른 대중독재가 남긴 후유증은 모두의 몫이었다.
봉사(?)하겠다는 후보님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고 묻겠습니다. 당선 후 못된 짓이 드러나 시민들이 물러나라고 했을 때 비굴하게 변명하지 않을 용기는 갖고 있습니까? 부디 권력의 종착지가 교도소 입구는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선출직의 선택은 이성과 공익을 잣대로 한 ‘엄한 사랑(tough love)’이어야 모두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유권자들은 말로 꼼수를 부린다거나, 함량 미달인 후보들을 냉정하게 가려 후회 없는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