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남' 아닌 '가족'도 아닌…] '용모' 따져 '가족' 구하나…

옛날에는 '일꾼'구했어도 피 나눈 형제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는데

▲ 어느 떡볶이 집 ‘구인광고’.

김유정이 쓴 단편소설 중에 〈봄봄〉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중의 주인공인 ‘나’는 점순이하고 혼인을 시켜준다는 약속만 믿고 3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머슴살이를 하지만 점순이가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걸 구실로 그 아비인 봉필이 혼인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소설에서 ‘나’는 비록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봉필과 점순이 부녀에게 ‘남’으로 취급 받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나’ 아닌 사람은 모두 ‘남’이다. 이따금 자신과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범위를 조금 넓혀서 쓰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은 ‘남’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도로남〉이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그걸 증명한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있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아~ 인생

 

〈봄봄〉의 주인공 ‘나’ 또한 ‘점 하나’ 차이에 해당되는 점순이의 작은 키 때문에 ‘남’과 ‘님’을 넘나들고 있다. 그런 ‘장난 같은 인생사’에 애간장을 태운다. ‘나’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점순이와 혼인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남’이 아닌 명실상부한 ‘식구’로 대접받는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가 봉필을 꼬박꼬박 ‘빙장어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생겨난 아들, 딸, 손녀, 손자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 ‘식구(食口)’다. ‘식구’는 한자말 그대로 ‘먹는 입’이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 이들의 공동체’다. ‘가족’의 다른 이름으로 쓰일 만하다.

 

가족은 또 사회의 기초 단위이기도 하다. 그게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의 경우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했다. 그 절반에 가까운 398쌍이 이혼했다. 이혼율이 세계 3위라고 한다. 1위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 그뿐 아니다. 갈라서면서도 자식 양육은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추세다.

 

아예 왕래조차 끊고 사는 부모형제도 적지 않다. 노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는 다툼도 끊이질 않고 있다. 상속 재산의 분할을 놓고 형제들이 법정 소송을 벌이는 일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가 되어 버렸다. 기능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사회환경의 변화가 그 주된 까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인 것 같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사고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돈 아닌가 싶다.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은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돈 나고 사람 나더니 이제는 가족조차 돈 다음에 났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가고 있는 듯하다. 삶의 패턴 변화에 따른 개별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공동체 개념이 약화된 탓이다.

 

가족 고유의 가치가 유지되고 있는 영역이 있긴 하다. 조직에 속해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다. 그런 조직은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닌 ‘남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2차적 의미의 가족이다. 이때 주로 쓰는 말이 바로 ‘가족 같은’이고, ‘우리가 남이가’다. 한때는 어떤 기업광고의 카피로 ‘가족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다.

 

그림 속에 있는 건 북대 구 정문 근처에서 발견한 어느 떡볶이 집 ‘구인광고’다. 적힌 그대로 흔히들 쓰는 ‘직원 모집’이나 ‘아줌마 구함’이 아니다. ‘가족 구함’이다. 형제자매처럼 믿고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겠다.

 

이 또한 앞서 말했던 2차적 의미의 가족일 것이다.‘가족’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단다. 우선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해야 한단다. 연령대도 40대에서 50대 초반으로 제한되어 있다. 떡볶이 가게에서 일을 거들어줄 사람을 ‘가족’으로 모신다면서 ‘용모단정’은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니까? 그뿐이 아니다. ‘성실하신 분’이 아니어도 자격 미달이다. ‘한 성실’ 하는 사람만 지원하라는 뜻이다. 둘 다 갖추었어도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으면 역시 ‘가족’으로 함께하기는 곤란하다. 기운이 떨어져서 가족 역할을 제대로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두루 갖추어서 가족이 된다. 가족이니까 내 집안일처럼 성심껏 열심히 일한다. 주인이 월급을 미룬다. 가족이니까 선뜻 얘기를 못하고 망설인다. 또 한 달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월급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거기에 대고 주인은 혹시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닐까. “가족끼리 돈은 무슨…, 우리가 뭐 남인가?”

 

물론 억지스러운 지레짐작이다. 옛날에는 ‘가족’이 아닌 ‘일꾼’을 구했어도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잘만 지냈기에 하는 말이다.

 

앞서 보았던 〈봄봄〉의 끝부분에는 ‘나’가 ‘장모님’과 점순이에게 양쪽 귀를 하나씩 잡혀서 괴로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작가 김유정이 마을에서 직접 목격했던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 인물 ‘나’와 ‘점순이’는 훗날 정식으로 혼인해서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