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력제·강장제 현혹되어 무고한 생명 죽이지 말고 혼자서라도 지조 지켜야

▲ 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LA총영사
책방 앞을 지나다가 불교 최초의 경전이라는 ‘숫타 니파타’를 발견하였다.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최초로 적어 놓은 것으로 읽기 쉽고 편안한 글이다. 좋은 말씀이 많지만 법정스님이 자기 오두막 벽에 붙여 놓았었다는 문장이 맘에 들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이 무엇이기에 그처럼 흔들리지 말고 혼자서 가라 했을까? 30여년전 네팔에 살 때 보니 힌두국가라서 소 대신에 새까만 물소를 농사에 부리고 잡아 먹고 있었다. 그게 무소인가 했더니 아니고 네팔 남부 부처님이 태어난 지역에 사는 코뿔소가 그것이라고 하였다.

 

영어로 라이나서러스(rhinoceros)라고 하는데 뿔이 두 개인 아프리카 것과 달리 네팔 코뿔소는 뿔이 하나로 더 희귀종이라고 하였다. 고생대에서 갓 나온 놈처럼 무식하게 생겼지만, 총알도 뚫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 껍질이 갑옷처럼 몸을 감싸고 있다. 덩치도 3톤 가깝고 뿔도 1미터에 이르니 정글의 왕이라고 할 만 하였다.

 

1981년 내가 네팔을 떠날 때까지도 그곳은 사실상의 절대군주국이었다. 1990년부터는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나 1996년부터 시작된 공산반란은 모든 정파간 합의로 2006년 실질적 민주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와중인 2001년 6월, 왕세자 디펜드라가 역사적으로 왕실의 원수 집안인 라나족 처녀와 자신이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왕 비렌드라와 모친 샤왕비 등 왕족 7명을 만찬장에서 기관단총으로 몰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날 왕궁의 대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족이 왕의 동생 기아넨드라였다. 그는 뜻밖에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절대왕정제를 선포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다. 2008년에 네팔이 공화국으로 재탄생하면서 그는 왕위를 잃었고 1768년 성립된 샤 왕조는 종말을 고하였다.

 

네팔 근무중 왕제인 그를 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는 여러 이권에 개입하는 등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47년 그가 태어났을 때 왕궁 점성가는 그의 부친이 그를 보게 되면 액운이 오니 격리시키라고 해서 왕궁 밖에서 길러졌다고 한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왕실 학살의 배후로 의심을 받기도 하였었다.

 

그와 가까운 네팔 기업인이 한번은 나에게 무소뿔 얘기를 하였다. 사냥금지인 무소를 이 왕제가 잡는다고 하였다. 아랍 왕족이나 부호들이 그 뿔을 휴대용 칼의 손잡이에 쓰는 것을 최고로 치며, 또 이를 갈아서 최음제로 쓰기 때문에 같은 무게의 금과 바꾼다고 하면서 그에게서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관심이 없다고 하니 무소의 껍질을 보여주었다. 쇳덩이처럼 단단하였다. 왕제가 잡은 것으로 싸게 주겠다고 하였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그랬던 그가 2001년 6월 왕이 될 때까지 네팔 자연보존협회 의장으로 활동한 열성적인 자연보호자라고 알려져 있으니 우습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상한 동식물들을 정력제니 강장제니 하며 먹는 일이 많지만 효과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무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현혹되어 무고한 생명체를 죽이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무소처럼 혼자서라도 지조를 지키며 꿋꿋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