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첫 희생자 전북대 이세종 열사 추모식 "민주화 헌신 숭고한 정신 기억하자"

시민·학생 100여명 참석 / "제대로된 진상규명 필요, 현시대 되돌아본 계기로"

▲ 17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제34주년 5·18민중항쟁 이세종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추성수기자 chss78@

제34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일(18일)을 하루 앞둔 이달 17일 오후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학교 이세종 열사 추모비 앞.

 

이날 5·18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가 주최한 이세종 열사 추모식에는 5·18 첫 희생자인 그의 희생을 기리는 한편 유지를 받들기 위해 옛 동지들과 시민, 대학생 등 100여명이 모였다.

 

추모식에 앞서 강익현 5·18구속부상자회 전북지부 회장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애도했다.

 

강익현 회장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했던 5·18은 여전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책임지지 않는 사회문화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숭고한 정신으로 민주주주의 실현에 몸 바친 이 열사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여전히 낮은 것 같다”며 “이번 추모식을 통해 어린 학생들이 이 열사의 행적과 정신에 대해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0시께 이 열사(당시 21세·전북대 농학과 2학년)는 전북대 제1학생회관 인근에서 피투성이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학교로 들이닥친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겨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폭행을 당해 숨진 것.

 

그는 당시 전남·북 대학 연합체 ‘호남대학총연합회’ 연락책임자로서 대학 안에서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유인물 제작 및 배포활동이 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 열사의 사망 원인을 단순 추락사로 발표했다. 게다가 1988년 광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열사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이후 이 열사는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첫 5·18 희생자로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날 추모식은 이 열사 약력 소개, 추모사, 헌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식에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이 열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가슴에 노란리본을 단 전북대 학생 50여명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민지씨(20·여·간호학과 1학년)는 “5·18의 역사적 의의와 당시 시대상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됐다”며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이 열사가 걸어온 투쟁의 길을 통해 현 시대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온 최갑표 고고문화인류학과 시간강사는 “요즘 학생들은 취업과 학업에만 몰두하느라 주위를 제대로 돌아볼 여유가 없다”면서 “이번 추모식을 통해 학생들이 우리사회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동학기념회 이영호 이사장,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조성용 대표, 김영기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대표, 하연호 전국농민회 전북도연맹 의장, 최인규 목사, 전주보훈지청 김현숙 보훈과장 등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 16일 전주 전라고는 교내 이세종 열사 추모비 앞에서 동문인 이 열사(8회)의 얼과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총학생회장단과 총동창회 임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