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 자취방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문득, 방바닥과 정리장 사이 뿌옇게 자리 잡은 먼지가 눈에 띄었다. 정리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의 먼지를 닦아내니, 그 앞에 있는 침대 모서리 먼지들이 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다 늦은 저녁, 느닷없이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자취생활 4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작은 방에 무슨 물건들이 그리도 많은지, 큰맘 먹고 버릴 물건들을 정리했다. ‘언젠가는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서랍장에 모셔놨지만, 계절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도 꺼내어지지 않는 옷들, 또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상자마다 쟁여놓은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요긴하기는 커녕, “이런 게 있었네.”하고 있다. 버리지 못한 이유는 ‘미련’보다는 ‘미련함’이지 싶어, 그 미련함에 반박하듯이 재활용 수거함으로 직행.
한참을 정리하기에 몰입하느라 오히려 온 방을 뒤집어 놓고는, 한동안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 물건 하나가 발견됐다.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을 뿐인데, 방 안의 공기들이 그 물건에 대한 기억들 수만 가지로 가득 찼다. 짐보다는 추억과 낭만과 내 20대의 작은 세상을 더 많이 담아냈던, 여행 가방이었다.
대학 때는 방학이면 농활, 악기 전수, 해외봉사, 해외연수, 하다못해 친언니처럼 좋아했던 언니들의 배낭여행에 따라가고 싶어 돈을 모았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강원도로, 부산으로, 또 전남일주까지 배낭 하나만 달랑 챙겨가지고는 버스와 기차만으로도 ‘여행’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여비도 넉넉하고 이동수단도 업그레이드되었는데도 왜 여행이 여행같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싶다.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일’보다도 고단했지만 ‘공부’보다도 얻는 것이 많았으며 그 어떤 ‘휴일’보다도 달달했다. 편하자고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 때는 그래도 어렸고, 그래서 마냥 신났고, 아무튼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핑계를 늘어놓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그 어느 때라도 지금보다 덜 치열했거나 덜 심각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막내동생이 태어나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초등학교 때도, 첫사랑에 실패했던 중학교 때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좋았다’는 억측이 만들어낸 속담이 바로 ‘구관이 명관’인 모양이다. 역시나, 마음가짐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살면서 축적해가는 경험치는 점점 높아지는데, 희한하게도 목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마음은 지쳐가게 된다. ‘일을 위한 일’이 고약하게 지속되다보니,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여행을 마음먹기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월요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주말에 휴식이 꼭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에 여행이 ‘휴식’이 아닌 또 하나의 ‘고단함’이 될 것만 같고, 그렇다고 마냥 집에 누워 있는다고 해서 월요일이 덜 두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계바늘 위에 걸터앉아서 시간이 옮겨다 주는 대로 정말 꾸역꾸역 살아가는 느낌이다.
배낭을 꺼낸 김에, 다시 한 번 여행갈 채비를 해 보려고 한다, 배낭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듯이 감성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또 한 10년쯤 흐르고 난 뒤에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하며 억측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 하나 더 만들어 와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