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조용필이 오래 전에 부른 〈정〉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받는 것이 정인지, 아니면 주는 것인지 묻고 있다. 받을 때는 꿈속 같은데 줄 때는 안타깝단다. 아주 흔히 쓰는 말인데, ‘정’이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정의를 내리면 이런 식이 되겠다.
택시비가 4,700원이면 5,000원짜리를 내고 잔돈은 사양하는 것, 반대로 4,200원쯤 나왔을 때 손님이 5,000원짜리를 주면 천 원짜리를 거스름돈으로 주는 것, 그런 게 정이 아닐까 싶다. 주는 건지 받는 건지 묻거나 따질 필요가 없다.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 기쁘게 받으면 그만인 게 ‘정’이기 때문이다.
‘정’은 생기기도 하고, 붙기도 한다. 쏟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며, 깊어지기도 하는 게 ‘정’이다. 떨어질 때도 있다. 남녀가 헤어질 때는 일부러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정을 떼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런 일을 반복하면 결국 ‘눈꼽’이나 ‘병아리 눈물’ 만큼 남아 있던 ‘정나미’마저 떨어지게 된다. 물론 더욱 심해지면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우리네 복잡한 속내처럼 ‘정’은 종류도 다양하다.
‘덧정’이라는 게 있다. ‘덧니’처럼 ‘더해지거나 덧붙은 정’이다. 한 곳에 정이 붙으면 그 주변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정을 말한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고 했다. 바로 ‘덧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웃과 나누는 ‘따뜻한 정’이 ‘온정’이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하게 만드는 힘은 ‘열정’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게 오래 가지 못하고 식어 버리면 ‘냉정’해진다. 서로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있다. 분노가 극심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정’도 마찬가지다. ‘고운 정’은 몰라도 ‘미운 정’은 지나치면 정이 거꾸로 솟아서 크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게 바로 속 좁은 어른들이 끼고 사는 ‘역정’이다.
‘초코파이’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情’이다. 이 ‘정’은 ‘떼려는’ 정이 아니다. ‘냉정’도 아니고 ‘역정’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열정’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훈훈하게 나누는 ‘온정’일 것이다. 서로 상대에게 먼저 주고 나중에 받으면서 유대감을 높이는 바로 그런 마음이다.
이 초코파이가 한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요즘말로 ‘인기 캡’이었단다. 북한에는 초콜릿 수입이 안돼서 그런 걸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뿐인가. 달콤한 간식류는 자본주의 산물이라고 못 만들게 했기 때문에 세상에 처음 보는 초코파이 맛에 다들 홀딱 반했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그게 북한 근로자들 평균 임금의 거의 1/10에 달하는 10달러에 암거래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에게는 흔해빠진 초코파이가 그렇게들 인기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자리에 남쪽 형제가 꼭 챙겨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초콜릿이란다. 이 또한 남북통일이 시급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그 분이 연초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 자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단다. 엥? 남북통일이 ‘대박’이라고? ‘대박’은 흥행에 성공해서 큰돈을 벌어들인 일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 부동산 투기로 한 몫 크게 잡았거나, 카지노 같은 도박판에서 잭팟을 터트렸을 때 주로 쓰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전 세계 외신기자들까지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것도 신년 벽두부터 어찌 그런 천박한 언사를, 그것도 ‘남북통일’이라는 온 겨레의 염원을 가리켜…. 하마터면 정나미가 떨어지다 못해 오만정까지 다 달아날 뻔하지 않았는가.
아, 알겠다. 이해하고도 남겠다. 속 다르고 겉 다른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했지 진정으로 통일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 것이다. 그런 천박한 말로 상대편을 노골적으로 자극해서 냉전시대의 남북 대결구도를 은근슬쩍 고착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빨갱이’와 ‘종북’ 프레임으로 집권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봤던 조용필의 〈정〉은 이렇게 끝난다.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네…
누군가에게 쏟든, 아니면 그 누군가 때문에 울든, 주든 받든, 결국은 ‘내 가슴에 오늘도 남 모르게 무지개 뜨’는 게 바로 ‘정’이다.
통일은 그림 속의 ‘情’처럼, 또한 지난 민주정부 시절에 그랬듯이, 북에 대한 적대감부터 버려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판알이나 퉁기는 사사로운 욕심도 버리는 게 좋다. 서로 ‘온정’에 ‘덧정’을 더해가면서 추진하는 게 지름길일 것이다.
우리네 보통사람들 생각에 남북통일이란 동포끼리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만나서 정이 듬뿍 담긴 초코파이를 마음껏 나눠먹게 되는 걸 뜻하는 말 아닐까. 그게 남북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고, 진정한 ‘대박’이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