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이 후 1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지정 유적지를 제외하고 변변한 표지판 하나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 고부 농민 봉기지인 예동, 고부 농민 봉기 이후 농민군의 유진지인 말목 장터, 3월 봉기 동학농민군 유진지 사시봉, 최후의 패전지 태인 위령탑 건립 문제 그리고 김개남 생가, 손화중 생가, 최경선 출생지 보존 문제 등은 여전히 관심 밖으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의 경우 북해도 대학의 한 표본고에 90년 동안 있다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천도교·동학혁명유족회 등이 공동으로 봉환위원회를 구성해 1996년 5월 봉환식을 가지고 어렵사리 한국으로 봉환해 왔음에도,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지 20년이 다 된 현재까지 여전히 안장되지 못해 안식처 마련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돈 1954년에는 한국전쟁의 상처와 휴전을 둘러싼 강대국의 이권 싸움이 극에 달해 있었고, 당시 미국과 중국 등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휴전선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 세상이 크게 변한 것 같지만 여전히 과거의 문제는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고, 120년 전 개혁의 깃발 아래 탐관오리의 처벌, 지벌을 타파하고 고른 인재등용, 조세개혁을 외치던 동학 농민군의 요구 역시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을 세간의 무관심으로 18년간이나 보관해온 행위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전주역사박물관과 관련기관 및 단체는 합심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정읍 황토현 등 적당한 장소에 유골을 안장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 이상 예산타령이나 행정절차를 핑계로 동학의 뜻 깊은 정신이 방치되고 유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자유, 민권, 평등, 자주의식을 표방했던 동학의 시대정신을 다시금 짚어보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넓히고,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