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휘두르는 공권력의 이면이 주요 관심사입니다. 약자인 개인이 아무리 바둥바둥 뛰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공감을 얻고 싶습니다.”
생애 첫 장편 ‘사선의 끝’의 후반작업이 한창인 이은상 감독(30)은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졸업작품인 단편 ‘아파트’를 시작으로 다문화가정을 다룬 ‘짝퉁엄마’, 군대문화를 소재로 한 ‘복날’을 거쳐 장편에 도전한다. ‘사선의 끝’은 군산을 배경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40대 초반 남성의 이야기다.
이 감독은 “공권력 내부의 부조리, 비리 등을 재료로 했지만 이는 수단이고 진짜 이야기는 사람이다”며 “인물이 심경의 변화를 느끼거나 아픔과 기쁨 등 인간 본성이 지닌 정서를 화면에 구현해 관객과 소통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콘티작업을 하다보면 주인공이 멍하니 개미가 지나가는 땅을 바라보는 장면이 들어간다”면서 “집단에 속해 있지만 사회적 약자로 홀로 존재하는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석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 전주 MBC 영화제 우수상, 제7회 동해아시아 청소년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제12회 전북 독립영화제 관객상, 제6회 상록수 다문화 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그에게 영화감독은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부의 외아들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하루 2~3편의 영화를 보는 ‘시네 키드(cine kid)’였다.
“부모님께서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말씀을 해놓아서 어릴 적 성룡, 장 클로드 반담, 스티븐 시걸 등이 나오는 액션 영화를 대부분 섭렵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영화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첫 단편을 학교 축제 때 상영했습니다.”
막상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현실의 난관은 지속되고 있다.
그는 “모든 영화감독은 다음 작품에 대한 기약이 없다는 점이 최고의 난제다”며 “지역의 배우들은 대부분 각 극단의 공연과 부가적인 직업을 병행해 섭외에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단편 ‘봄날’에서 주인공이 개를 앞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사람 일당보다 비싼 35만 원의 ‘거금’을 주고 골든 리트리버를 어렵게 구했다. 하지만 개가 자꾸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오는 바람에 하루종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도 대부분 영화감독이 지닌 꿈인 작가주의를 고집하면서도 상업성을 갖춘 작품이 목표다.
그는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작품인데 대중의 높은 호응을 얻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서 “어둡고 심오한 이야기를 선호해 가끔 극장에서 상업영화를 관람하면 앞뒤 내용이 뻔하게 진행돼 졸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전주를 배경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도 염두하고 있다.
그는 “전북은 콩쥐팥쥐, 선녀와 나무꾼, 흥부전, 춘향전 등 원형의 이야기가 풍부한 만큼 하나의 소스를 게임 스토리, 드라마 등 다양하게 소비하도록 만드는 콘텐츠도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