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피해자들과 합의할 때 사용하도록 위임받은 돈 가운데 잔액 일부를 썼어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돈을 맡긴 쪽에서 애초 합의 대행을 부탁할 당시에 잔액을 어떻게 처분할지 정하지 않았고 정산을 요구하지도 않았다면 잔액 반환이 당연한 약속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피해자들과의 합의에 써달라며 처조카 A씨에 게서 받은 돈 2억원 중 잔금 수천만원을 가로챈 혐의(횡령)로 기소된 오모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6일밝혔다.
A씨의 아버지는 2009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피해자들은 58명이었으며 피해액은 1억6천900여만원에 달했다.
A씨는 오씨의 처조카였고 그의 아버지는 오씨 전처의 오빠였다.
A씨는 변호인 사무실에 2억원을 맡기고 오씨에게 '피해자들을 대신 만나 합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오씨는 3∼4개월간 여러 지역에 사는 피해자들을 만나 합의를 성사시켰고 A씨 아버지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오씨는 합의금과 공탁금, 경비 등으로 1억5천만원을 썼고 남은 4천980만원은 전처의 생활비와 자신의 채무 변제 등에 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부친의 판결이 확정된 뒤 오씨를 고소했다.
1·2심은 오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A씨가 피고인에게 능력껏 피해자들과 합의만 성사시키면 구체적인 사용처를 묻지 않고 남은 금액의 반환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돈을 맡겼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피해자 수와 피해액, 합의에 들인 노력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남은 금액을 반환하기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횡령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