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억하기와 지역정신 함양

▲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지나간 과거로 끝난 일일 뿐이다. 대단했던 과거와 녹록치 않은 현실이 교차하는 전북지역의 경우 역사에 대한 기억은 더더욱 의미가 크다.

 

전주의 현재만을 보아서는 조선시대 3대도시로 칭해졌던, 조선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수부 전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전북의 현실만으로는 반상(班常)의 차별을 마감하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근대사회로 나가는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이 전북이었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어렵고 힘들 때 역사의 가치 커져

 

역사를 기억해야 지역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이 형성될 수 있다. 역사는 기억될 때 현재를 살아가는 힘과 자존심이 된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역사는 그 가치와 존재감이 더 커지는 면이 있다. 그런데 전북은 역사 기억하기에 소홀한 점이 있다.

 

지난 2009년 기축년은 정여립모반사건이 일어난지 7주갑(4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임진왜란 직전 1589년에 발발한 정여립모반사건은 3년여를 끌면서 동인 천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은 전주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전라도는 쑥밭이 되었다. 그럼에도 7주갑을 맞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주시의 지원을 받아 전주학 사업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데 그쳤다.

 

2012년은 임진왜란 7주갑(4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전국적으로 임진왜란에 관한 학술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정작 임난 승리의 주역 전북에서는 전라북도에서 지원한 전북박물관미술관협의회 사업비로 임진왜란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 거의 다였다.

 

올해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지 120주년, 즉 2주갑이 되는 해이다. 반봉건, 반외세의 동학농민혁명이 전북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북이 산실이고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국적 행사가 전북지역에서 진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역사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전북역사를 기억하고 현재화하기 위해서는 전라감영복원과 호남실학원건립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전라감영은 전라도의 수부로서 전주의 역사적 위상을 담고 있다. 전라감영은 전주와 전북의 역사적 자존심이다. 전라감영복원은 한옥마을과 연계한 원도심활성화 방안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의 유적지 부안 우반동에 호남실학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호남실학원은 조선후기 호남실학을 집대성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전북지역의 정신사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영남에는 안동에 한국학진흥원이 건립되어 있고, 광주와 전남에는 한국학호남진흥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학' 설치해 지역 정신 정립해야

 

광역자치단체로 지역학이 없는 곳은 전북밖에 없다. 전주학이 10년째 지속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전북도에서도 시급히 전북학을 설치해 지역학 제반분야와 함께 전북의 역사와 문화를 총괄해 지역정신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호남실학원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전북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문화창조산업에도 지역정신이 연계되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할 때 과거는 현재가 된다. 기념일은 역사를 기억하고 재생하는 한 방안이다. 역사는 비가시적이다. 전북지역의 재정도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역사적 기념일 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지역의 정신사적인 것들을 방기하거나 뒷전으로 미루어놓아서는 안된다. 집안이 어려워도 자식 교육은 시켜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