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와 배려와 사랑으로

▲ 오정민

현대는 컴퓨터를 통한 과학과 더불어 의학발전을 거듭하며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지만 이와 반면에 정신의 세력은 급격히 쇠약하여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치관의 혼돈과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사회, 현대인이 안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의 증후군이라고 한다.

 

오직 자신의 말이 참(眞)이라며 호령하듯 사는 사람, 늘 자신만 손해 본다며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늘 방관자적 입장에서 어느 쪽 의견에도 손을 들어 주지 않는 사람,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 의도적인 침묵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사람, 자신은 늘 남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친절을 가장한 위선에 익숙한 사람, 상하를 몰라보는 사람의 부류를 들 수 있다.

 

땔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가는 나무꾼이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던 중 길 다란 칡넝쿨이 손에 잡혀 무심코 낫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어흥’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칡넝쿨이 아니라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있음을 알게 된 나무꾼은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잔뜩 화가 난 호랑이는 나무 위로 오르지도 못하고 나무 주위를 맴돌다 몸으로 세차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무꾼의 몸은 그만 호랑이 등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호랑이는 굴러들어 온 먹이 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방방 뛰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데, 저 편에서 일하던 농부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복이 없어 이 무더운 날 죽도록 일만 하는데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호랑이 등에서 팔자 좋아 호랑이 등에서 덩실덩실 춤만 추는구나…”하며 탄식을 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의 눈높이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대성인의 한 사람인 공자도 노년에 한때의 의심과 오해로 후회를 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와 함께 이웃나라를 가고 있었다. 여러 날 가기 때문에 날은 저물고 식량마저 떨어져 어느 낡고 오래된 집을 찾아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며칠 동안 채소로 허기를 달래기는 했지만 몹시 밥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안회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 내려가 쌀 한 줌 빌어다가 밥을 짓고 있는데 공자는 밥 냄새에 그만 벌떡 일어나 냄새가 풍겨 오는 창구멍을 통해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안회가 막 솥뚜껑을 열고 한 주걱 퍼서 먼저 제 입속에 넣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저런저런, 평소에 예의범절이 깍듯하던 애가 오늘따라 속과 겉이 다르다니 이럴 수가…”

 

공자는 즉시 창구멍을 닫아버리고 토라진 채 안회가 들어오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이윽고 안회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자 “안회야, 게 안거라. 조금 전에 꿈에서 네 조상을 보았는데 하는 말이 ‘조상님께 먼저 진짓상을 지어 올리지 않고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며 야단치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느니라.” 안회는 정색을 하며 “쌀이 떨어져 여러 날 채소로만 올려 드렸기로 오늘은 마음먹고 아래 마을에 내려가 쌀 한 줌 빌어다가 밥을 지어 푸려는 순간 갑자기 천장에서 흙 한 덩이가 솥 가운데로 뚝떨어지기에 이걸 그대로 선생님께 올리면 정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이물질을 제거하고 지저분한 부위를 도려내어 제 입에 넣었을 뿐인데 그것이 잘못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 도 모르고 너를 의심하게 되었으니. 이제 내 나이 칠순, 여태껏 나는 내 두뇌와 내 총명함을 믿고 살았는데 이제는 내 두뇌도 총명함도 믿을 수가 없구나.”

 

자기만의 조그만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재단하거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세상은 거꾸로 보이기 마련이다.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한발 나아가 긍정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며 이해와 배려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삶은 훨씬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수필가 오정민씨는 월간 〈수필문학〉과 〈한국문예사조〉(시)를 통해 등단. 원광효도마을 효 실천자원봉사학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