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핀란드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국가들이 세계적인 경쟁력과 높은 삶의 질을 자랑하는 것은 평등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통한 높은 교육수준과 관련되어 있다. 이에 반해 세계경제위기 이후 재정위기를 맞고 국민 복지의 질이 추락한 남유럽의 이태리는 수월성 교육을 무시하고 평등성만 강조한 균형 잃은 교육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지난 6월 4일 교육감선거에서 17명중 13명이 진보성향을 띠는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언론에서 교육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모두 한국교육의 장래를 위하여 일 할 교육감들이라고 볼 때, 이제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여 보다 멀리보고 균형 잡힌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육이 너무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강조하는 평등성은 교육에서 중시해야 할 가치이다. 교육기회의 평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환경이라고 해서 또는 낙후된 농촌지역이라고 해서 평등한 교육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원의 낭비이고 사회적 갈등요소가 된다. 그러나 같은 교육기회가 주어진다하더라도 사람의 노력과 능력, 소질 및 개성의 차이 때문에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평등교육이라고 해도 개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자율성이 확대되어 지역의 특성과 개인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경쟁 환경에서 수월성교육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지구상에 가장 못사는 나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한 것은 바로 교육의 힘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수월성교육과 경쟁의 효과가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경쟁은 인류역사에서 혁신과 사회발전을 견인한 원동력이 되어온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 입시위주의 지나친 경쟁교육은 높은 청소년 자살률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평등성과 수월성을 어느 한쪽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교육은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시기에 평준화교육의 단점을 보완하고 외국으로 나가려는 교육수요를 일부라도 국내에서 만족시키자는 의미에서 수월성교육에 초점을 맞춘 자립형사립고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상기해보면 당시 진보성향의 문민정부에서 자립형사립고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평준화교육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큰 혜안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제 평등성이나 수월성, 또는 진보와 보수의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교육은 분명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교육이 이념논쟁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교육을 살리고 다양한 교육수요에 맞추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평등성과 수월성의 조화를 추구해야한다. 이제 모든 교육관련 주체들은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여 교육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교육은 진영논리에 매몰된 한국의 정치현실과는 달라야하기 때문이고, 미래 세대들에게 균형 잡힌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육 정상화, 인성교육, 교사의 자존감 회복,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교육은 이념논쟁으로가 아니라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소통과 균형적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한국의 미래가 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