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선거가 끝나면 일정 부분 혼란이 있게 마련이다. 승자 편에 선 사람과 패자 편에 선 사람의 처지가 극명하게 된다. 일반인들이야 부담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패자 편에 섰다면 조금 서운할 뿐이다. 일부 사업가들도,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부분 양다리 걸치기 작전을 쓰기 때문에 카멜레온처럼 처신을 잘만 하면 사업 차질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다르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관계없이 패자 편에 섰던 공무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예상된다. 전임자의 사람들이야 더할 나위 없다. 이는 시공을 초월하는 상식이다.

 

송하진 도지사 당선인은 선거 후 “본인들이 더 잘 알아서 처신할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현직 산하기관장들의 사표 요구를 시사했다. 송 당선인의 말을 두고 ‘계속 근무해도 좋다’고 해석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어제 전북도 정무부지사와 비서실장, 비서실직원, 공보과장직대, 공보실 계약직원 등이 사표를 냈다. 이들 중 일부는 당선인측 아무개의 요구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도지사가 바뀌면 더 근무하라고 해도 근무 않고 당연히 물러날 사람들인데 웬 사표 소동인가. 뭐가 그리 바쁜가. 이 때문에 벌써 점령군 횡포 얘기가 나온다. 송하진 체제라고 해서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살풍경이 감돈다. 그렇다면 정규직 공무원 중에서도 불이익 받을 사람 적지 않을 것 같다.

 

김종규 부안군수 당선인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어 “과거 방폐장 사태와 관련된 살생부 소문이 지속적으로 떠돌고 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다”며 “조직 안정을 위해 업무 능력을 바탕으로 한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4 부안군수 선거는 2003년 7월 이후 극과 극을 달린 김종규-이병학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둘만의 경쟁이 아니라 10년 전 방폐장 찬반을 놓고 다퉈온 세력들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이었다. 김종규 당선인이 10년 전 방폐장 반대세력에게 내준 군수자리를 되찾게 되자 지역사회에서는 김 당선인이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런 소문을 김 당선인이 진화하고 나선 것이다.

 

김 당선인에게는 분명 억울한 감정이 있다. 이를 씻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와신상담, 결국 군수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직전 군수가 교도소에 있는 난리통에서 그가 살생부를 관리하며 혼란을 자초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